붓꽃 [2014.6.20,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 붓꽃 하굣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힘껏 뛰었다 게임방 입구에서 잠시 피했다가 다시 뛰었다 피자 집 담벼락에 붓꽃 한 송이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고 있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때리는데도 눈을 감고 꿋꿋이 이겨내고 있었다 나도 뛰던 걸음을 멈추고..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6.20
동피랑에 가거든 동피랑에 가거든 - 노 정 숙 - 큰소리 내서 웃지 마세요. 이야기 소리도 낮춰주세요. 천사의 날개를 배경으로 팔 벌리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스마일만 하시고요. 어린왕자와 어깨동무하는 포즈를 취할 때도 예쁜 앞니만 살짝 드러내세요. 나무다리를 건너거나 물속을 들여다보는 트릭아..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6.16
희망 충전기 [2014.5.28, 조선일보] 희망 충전기 깜박깜박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졌다. 박스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할머니가 엉금엉금 끌고 가신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메고 여학생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힘겹게 기어가는 할머니 바퀴가 가방 끝에 매달린 지친 하루가 땅속으로 푹- 꺼질 것만 ..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5.28
이팝꽃 시간 /유재일 이팝꽃 시간 여남은 살 넘어가던 옥포면 다리목 발 빠른 트럭에게 길 먼저 내어주고 넉넉히 안으로 휘어진 논둑길 걷는다 길섶은 서툰데 마중 나온 유년 봄빛 자운영 꽃대 위로 꽃비 연신 내려앉고 명치 끝 툭, 치고 가는 굵은 바람 한 줄기 이팝꽃 휜 가지가 옛 기억 줄을 내려 아..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5.19
봄날 저녁 [2014.4.21,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 봄날 저녁 문득 들렀습니다 산 그림자 붉은 저녁 당신의 오래된 집도 꽃등을 달았더군요 어디쯤 걸어오실까 연신 바람은 보채고 서쪽 하늘 끝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잔약한 산새들을 보듬는 운판 소리 먼 길은 소리를 좇아 더듬어 갑니다 몇 소절 ..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4.21
사진과 思惟, 그리고 文章 [2014.4.17, 조선일보, 허영한의~] 사진과 思惟, 그리고 文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소설가 김훈의 명저 '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개정판에 실린 작가의 말에 의하면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로 쓸지, 조사(助詞)를 '이'로 할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은'은 주관적이고 신파적..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4.17
산넘어 남촌에는 [2014..2.17, 동아일보]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190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2.17
난(신석정) [2014.2.6,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蘭 바람에 사운대는 저 잎샐 보게 잎새에 실려오는 저 햇빛을 보게 햇빛에 묻어오는 저 향낼 맡게나 이승의 일이사 까마득 잊을 순 없지만 蘭이랑 살다보면 잊힐 날도 있겠지… -신석정(1907~1974) 유재일 신석정 시인은 난초를 노래한 시 여러 편을 유..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4.02.06
잊응께 [2013.12.19,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 잊응께 그만, 뚝, 엥간이혀, 미안헐 거 한 개도 읍서 일할라 눈치 볼라 그 5년 내게 잘 헌 거여 그렁께 울지를 마러 날 울리지 말란마려! 건강허고 사업 잘 해야혀 그 술, 술 작작 마셔야 여자덜 조심하라꼬 패가망신 십상이여 알었지, 떠나면 곧 잊.. 초대.추천 문학작품 201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