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산넘어 남촌에는

죽장 2014. 2. 17. 11:41

[2014..2.17, 동아일보]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190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嶺)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데.

찬 바람결에도 봄 냄새가 맡아지는 요즈음이다. 이 냄새에 가슴 부풀고 설레던 게 그 언제던가. 아무 설렘 없이 소금의 짠맛, 설탕의 단맛처럼 계절을 식별할 뿐인 내 쇠로한 감각이 선뜩하다. 그런 차에 이 시를 읽노라니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가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는’ 듯 살랑살랑 떠오르며 가슴이 아늘아늘해진다. 노랫가락을 따라 흥얼거리다 인터넷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 ‘KBS 전속합창단 출신 가수’라는 자막을 달고, 소녀에서 이제 갓 처녀가 된 듯 앳된 모습으로 박재란이 노래하는 흑백 동영상이다. 얼마나 고운 모습, 고운 목소리, 고운 노래인지! 가수나 반주하는 악단이나 너무도 진지하게, 행복해하며 연주에 빠져 있다. 저이들 모두 젊으나 젊은 저 시절을 아득히 지나가고, 봄을 맞아 아늘아늘한 처녀 총각의 마음, 춘심(春心)을 노래한 시는 남아 있다. 시인의 고향 풍경이 담겼을, 쉽고 고운 이 시를 노래로 만든 ‘산 너머 남촌에는’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온 ‘국민가요’다.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납북시인 김동환 선생의 호는 파인(巴人)이다. 파인은 중국 파(巴) 지방 사람이란 뜻으로 ‘촌뜨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란다. 고향과 흙의 마음으로 노래하며 살련다는 순수하고 우직한 다짐이 세련되게 담겨 있다. 파인은 다들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의 정서를 화사하게 북돋던 노래로 불린 시를 여럿 지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봄이 오면’)도 파인의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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