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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잡던 시절이여!

귀신 잡는 해병이 된 친구 철이. 어느 날 갑자기 청룡부대원으로 선발되어 월남에 파병되었다. 손꼽아보니 53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국의 정글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친구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책상에 엎드려 길고 긴 사연을 적어 빨간색과 파란색 테두리가 있는 항공 우편용 봉투에 접어 넣어 우체국으로 가고는 했다. 내용이라 해봤자 무지하게 덥다는 그곳에서 몸성히 지내다가 무사히 귀국하길 바란다는 상투적인 말에 주변의 분위기를 양념으로 버무린 것이 전부였다. 며칠 후 날아온 답장은 아직은 살아있다는 절박함이었다. 더러는 우정과 진심이 스며있는 긴 편지에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는 말을 앞세우고 헬기가 하늘을 찢는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가는 풍경에 가까이서 ..

나의 수필세계 2023.01.21

겸상 시절

소년 시절 나는 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그때는 결혼한 형님 내외를 비롯하여 한 집에 함께 사는 식구가 많았다.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도 그랬고, 갖 시집온 형수도 밥상을 차리면 꼭 그렇게 했다. 겸상이 때로 불편하기도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놓고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겸상하기 싫다 하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겸상을 하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습관이 저절로 생겼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숟가락을 든 다음에 내가 들었고, 아버지가 수저를 놓기 전에 먼저 놓지도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먼저 일어서지 않았다. 밥상에 고등어 한 토막이 올라왔을 때 먼저 젓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밥상 앞에서 큰소리로 웃거나 떠들지도 않았다. 철부지의 눈치가 훗날 염치로 자리 잡은 듯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21

다음에는 어디로?

원주, 춘천을 거쳐 인제와 강릉까지 돌아오는 3박4일 강원도의 가을을 즐기고 온 때가 재작년이다. 친구들이 군생활 3년을 자랑하던 곳을 드디어 나도 간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한 구비 돌면 맑은 물이고, 또 한 구비를 돌아나가면 바위산이 눈앞에 다가섰다. 만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에 파묻혀 무한 힐링을 경험한 최고의 시간이었다. 지난주에는 무안, 목포, 영암을 거쳐 해남까지 내려갔다가 장흥, 벌교, 순천을 다녀왔다. 질펀하게 드러난 갯벌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은 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이었다. 눈호강 뿐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장흥 삼합에 바지락과 꼬막까지 양껏 즐기면서 오감이 행복했다. 강원도에서는 강원도의 멋에 빠졌었고, 전라도에서는 남도의 맛을 만끽했던 여행길이 동영상으로 저..

나의 수필세계 2022.12.01

파이데이아

팔공산 파계사 입구에 "파이데이아"라는 간판을 단 건물이 있다. 서양고전을 읽는 곳으로, 대구의 모대학에 봉직하다 정년퇴직한 교수님이 일생의 전공을 살려 후학들에게 아주 뜻있는 지식을 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고 일리아스, 오딧세이아가 흐른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요, 양식이라 생각된다. 우연히 지나다가 일게 된 건물이 마음에 들어 그려보았다.

그림공부 20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