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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좀 봐!

어제입니다. 갓바위 가는 길 양편으로 물든 은행잎이 대단했습니다. 필공산으로 오르는 길 내내 곱게 물든 단풍 때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윗쪽에서 시작된 단풍이 이제 막 여기에 도착했구나 했습니다. 고운 단풍물을 눈에, 가슴에 들여놓았습니다. 오래도록 머물러있기를 바래봅니다. 시간이 멈춰있질 못하듯이 고운 저들도 하나 둘 떨어지겠지요. 찬바람에 휩쓸려 이리지리 흩어지고 말겠지만 오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을래요.

그림공부 2022.10.31

처진소나무

천년 고찰 청도 운문사에는 천년기념물 제180호인 '처진 소나무'가 있다. 높이 6m 정도이고, 동서방향 17.6m이고 남북으로 20.3m이니 나무의 크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가봤더니 반세기 전 학창시절에 볼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풍성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처진소나무를 올려다보면, 세월의 깊이며, 그 무게감이 오래된 절집과 잘 어울린다는데 공감이 간다. 풍기는 모습이 온통 갖은 풍우풍상을 견디며 건강하게 살아왔음을 웅변하고 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림공부 2022.10.05

세상은 복잡하지만

세상이 더 복잡해졌지요. 사람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요.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고 있습니더. 무심히 올려다 본 하늘 오늘따라 참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나만 복잡하다고 느끼고 있는 건가? 보기가 조금 불편할 뿐 세상은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가을 냄새가 나는 바람이 걱정말라고 합니다.

그림공부 2022.08.20

7학년에게 묻다

그저께 손자 녀석이 방학을 맞아 왔을 때 나는 어김없이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은근한 압박이 이면에 깔린 질문이었다. 9만리나 남은 청춘에 높은 탑 하나 세우길 기대하는 것이 잘못일까? 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는가? 어릴 때는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국가적 인물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의사나 과학자, 교사와 같은 현실성이 고려된 것으로 바뀌었다. 가끔은 음악이나 미술 분야의 전문가는 어떨까 하다가도 운동장에서 멋진 활약을 하는 운동선수를 보면서는 저것도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멋지게 추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더러는 처음부터 불가능했고, 더러는 시도..

나의 수필세계 2022.08.11

선생님의 봉투

지난해에 이어 올 스승의 날에도 코로나 핑계를 대며 전화로 문안 인사를 떼운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코로나도 물러가고 있는 참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점심 식사를 모시고 싶다고 했더니 한가코 사양하신다. 식사는 그만두고 집에서 차나 한잔 마시자는 말씀을 따랐다.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가신 선생님 댁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참으로 반가웠다. 엎드려 큰절을 올린 후 마주 앉았다. 살이 많이 빠진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외에 별다른 운동도 하질 않으니 건강이 나아질 리 없는 노릇이다. 또 음성의 톤이 약간 높아진 것을 보니 청력도 못해진 듯했다. 가까이 앉아 얼굴을 쳐다보며 분명하게 말하고자 애를 썼다. 잠시 서글프다는 생각이 스쳤다. 노인의 곁을 스쳐가는 덧..

나의 수필세계 2022.08.01

풋 완두콩맛을 아세요

푸름이 짙어지는 오월이면 완두콩이 생각난다. 완두콩 푸른 들판이 눈에 어른거린다. 농사꾼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절의 완두콩이 기억의 저편에 있다가 성큼 다가선다. 아버지는 덩굴 채 뽑은 완두콩을 지게에 지고와 마당에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그 중에서 토실토실하게 여문 낱알들을 까서 함지박을 채우고, 덜 여문 것들은 따로 모아서로 부억으로 가져간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면 구수한 내음이 집안에 가득하다.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완두콩 맛을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중에도 풋것이 맛있다. 추억은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 완두콩 맛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킨다. 배가 고픈 계절이라서 더 그랬을까. 아내는 시장에 완두콩이 나오면 한 자루씩 사온다. 올해도 칠성시장 골목 안에 있는 단골집을 찾았다. 주..

나의 수필세계 2022.07.30

오월

오월도 중순이 넘어가면 들판의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예전 같으면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다. 몇 해 전부터 이맘때만 되면 그 귀한 쌀을 한 포대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예”라는 단 한 문장으로 일 년만의 안부를 떼우며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는 사나이다. 온몸에서 순박한 끼가 줄줄 흐르는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빈손으로 나타나서 자기 집에 잠깐 다녀가라는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집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창고에서 정미기(精米機)를 돌리고 있다가 맞아주며 앞장서서 텃밭으로 간다. 뒤따라가니 열무, 상추이파리가 반겨준다.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쑥갓, 청경채, 케일, 치커리도 아는..

카테고리 없음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