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선생님의 봉투

죽장 2022. 8. 1. 14:21

  지난해에 이어 올 스승의 날에도 코로나 핑계를 대며 전화로 문안 인사를 떼운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코로나도 물러가고 있는 참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점심 식사를 모시고 싶다고 했더니 한가코 사양하신다. 식사는 그만두고 집에서 차나 한잔 마시자는 말씀을 따랐다.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가신 선생님 댁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참으로 반가웠다. 엎드려 큰절을 올린 후 마주 앉았다. 살이 많이 빠진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외에 별다른 운동도 하질 않으니 건강이 나아질 리 없는 노릇이다. 또 음성의 톤이 약간 높아진 것을 보니 청력도 못해진 듯했다. 가까이 앉아 얼굴을 쳐다보며 분명하게 말하고자 애를 썼다. 잠시 서글프다는 생각이 스쳤다. 노인의 곁을 스쳐가는 덧없는 세월을 누가 있어 막을 수 있으랴.

  선생님께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잊어버리기 전에 줘야겠다면서 종이가방 하나를 내오셨다. 가방에는 두 번이나 읽었다는 책 한 질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얀 봉투를 꺼내 들며 내외가 내려가면서 커피나 한잔 마시라고 하신다. 빈손으로 나선 꼴을 후회할 사이도 없이 벼락이라도 맞은 양 정신이 번쩍 든다. 선생님께 봉투를 받다니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며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한참 벌어졌다. 그러나 선생님을 끝까지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염치없지만 받는 것이 도리라고 편하게 생각하였다.

 

  아흔을 앞둔 선생님은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시다. 선생님은 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으로 살아오는 동안 내내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큰나무였다. 큰 나무는 더위도 피하고 바람도 막아주는데 머물지 않고 존재 자체가 위안이고 힘이었다. 해가 거듭되어도 은혜의 색깔은 옅어지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갈수록 더 짙어졌다.

  잘 가라며 손을 흔들던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만 뒤따라 온다. 봉투를 받아들고 돌아오며 내가 정말 잘한 짓인지 묻는다. 선생님께서 주신 봉투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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