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이 짙어지는 오월이면 완두콩이 생각난다. 완두콩 푸른 들판이 눈에 어른거린다. 농사꾼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절의 완두콩이 기억의 저편에 있다가 성큼 다가선다. 아버지는 덩굴 채 뽑은 완두콩을 지게에 지고와 마당에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그 중에서 토실토실하게 여문 낱알들을 까서 함지박을 채우고, 덜 여문 것들은 따로 모아서로 부억으로 가져간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면 구수한 내음이 집안에 가득하다.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완두콩 맛을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중에도 풋것이 맛있다. 추억은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 완두콩 맛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킨다. 배가 고픈 계절이라서 더 그랬을까.
아내는 시장에 완두콩이 나오면 한 자루씩 사온다. 올해도 칠성시장 골목 안에 있는 단골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아직은 비싸니 조금 더 기다려보라 했지만 이왕 나온 김에 한 자루를 사왔다. 식탁 위에 펼쳐놓고 마주 앉아 깠다. 곁눈질로 아내를 보니 잘 익어 꼬투리의 색깔이 누렇게 변한 것들을 중심으로 까고 있었다. 나는 여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해가며 익은 꼬투리에 든 낱알을 그릇에 담는 한편 덜 익은 것은 따로 모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앞에는 덜 익은 콩꼬투리 무더기가 커졌다. 아내는 그중에서 여물어 보이는 것을 골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낱알로 까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하고 계속해서 덜 익은 쪽에다 슬쩍슬쩍 모았다. 무더기의 크기가 다시 전과 같아졌다. 아내는 한 알이라도 더 식량에 보태려고 나의 풋콩 무더기를 허물고, 나는 추억의 맛을 기억하며 눈치 없이 풋 완두콩 무더기를 쌓고 있었다.
깐완두콩은 냉동고에 보관해두고 한주먹씩 꺼내어 밥에 넣어 먹는다. 하얀 밥에 푸른 완두콩이 점점이 찍혀있는 밥그릇을 앞에 놓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아내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완두콩을 내왔다. 쟁반 위에는 소년시절의 추억 한뭉치가 통째로 올려져 있었다. 배고픈 계절이 아님에도 추억은 여러 날 굶은 듯이 달려든다. 김이 나는 완두콩을 입안에 넣고 눈을 감는다.
삶은 풋 완두콩을 제대로 먹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꼬투리 채 입안에 넣은 다음 앞니를 지긋이 물고 껍질을 당기면 입안에 콩알만 남게 된다. 굳이 씹을 것도 없다. 우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서 저절로 으깨어지며 완두콩 맛이 입안에 번진다. 구수한 맛이 아니다. 달작지근한 맛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완두콩 맛’이다. 풋 완두콩 맛 속에 나의 오월이 또 한 번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