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다음에는 어디로?

죽장 2022. 12. 1. 14:01

 

  원주, 춘천을 거쳐 인제와 강릉까지 돌아오는 34일 강원도의 가을을 즐기고 온 때가 재작년이다. 친구들이 군생활 3년을 자랑하던 곳을 드디어 나도 간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한 구비 돌면 맑은 물이고, 또 한 구비를 돌아나가면 바위산이 눈앞에 다가섰다. 만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에 파묻혀 무한 힐링을 경험한 최고의 시간이었다.

  지난주에는 무안, 목포, 영암을 거쳐 해남까지 내려갔다가 장흥, 벌교, 순천을 다녀왔다. 질펀하게 드러난 갯벌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은 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이었다. 눈호강 뿐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장흥 삼합에 바지락과 꼬막까지 양껏 즐기면서 오감이 행복했다.

 

  강원도에서는 강원도의 멋에 빠졌었고, 전라도에서는 남도의 맛을 만끽했던 여행길이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매단 채 하늘을 찌르고 있는 하얀 기둥이 빽빽한 인제의 자작나무 숲에서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최고의 조화를 발견했다. 그날 본 자작나무 숲을 오래도록 기억해 두고 싶어 집에 돌아온 즉시 자작나무를 주재로 수채화를 그렸다. 자작나무를 흔들던 신선한 바람 한 폭을 벽에 걸어놓고 일상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쳐다보면서 바람을 맞는다.

  장흥의 정남진 우드랜드에 스며있는 평백향기에는 일상에서 맡아보지 못했던 깊이가 느껴졌다. 편백나무 향이 아무리 좋아도 품어올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그 대신 편백나무 베개를 샀다. 인심 좋은 주인은 정육면체 편백 조각이 든 작은 주머니를 선물이라며 내민다. 은은한 편백나무 향을 맡으며 잠자리에 든다. 단잠에서 깨어나는 아침마다 편백나무를 키워온 물소리를 듣는다. 물론 베개에서 나는 소리다.

 

  자주는 아니지만 철이 바뀌면 집을 나서고 싶은 충동이 슬며시 다가온다. 대지가 봄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아파트 안팎을 채우고 있는 열대야 속에서 파도 철썩이는 밤바다를 그리워한다. 낙엽 밟는 소리뿐 아니라 흰 눈 내려 쌓이는 소리도 내 역마살을 부추기는 요건들이다.

  떠날 날짜와 장소를 정해나가는 시간부터 여행을 시작된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행의 여진은 한참 동안 지속된다. 메모리의 나의 여행지 폴더에 저장된 추억은 두고두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여행에서 건져 올린 풍경화를 보면서 행복을 재생시킨다. 편백나무가 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다음 여행을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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