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 나는 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그때는 결혼한 형님 내외를 비롯하여 한 집에 함께 사는 식구가 많았다.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도 그랬고, 갖 시집온 형수도 밥상을 차리면 꼭 그렇게 했다. 겸상이 때로 불편하기도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놓고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겸상하기 싫다 하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겸상을 하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습관이 저절로 생겼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숟가락을 든 다음에 내가 들었고, 아버지가 수저를 놓기 전에 먼저 놓지도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먼저 일어서지 않았다. 밥상에 고등어 한 토막이 올라왔을 때 먼저 젓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밥상 앞에서 큰소리로 웃거나 떠들지도 않았다. 철부지의 눈치가 훗날 염치로 자리 잡은 듯했다.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개인의 인격과 취향 존중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무슨 꼰대 같은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나는 그랬다.
한 상에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는 것을 겸상이라 한다. 겸상은 아무나 하지 않는다.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가 겸상을 하는 예가 많았다. 가족이 아닌 남과 겸상을 하려 한다면 먼저 상대를 인정하거나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와 겸상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겸상할 때에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을 앞에 놓고 묵묵히 밥만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동시에 상대의 밥 먹는 속도를 의식해야 한다. 식사 도중에는 적절한 대화가 오가야 한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맛있는 반찬을 독식하는 것도 곤란하다.
겸상은 상대와 소통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소통하려면 경우에 따라서 나의 의견을 바꿀 의향이 있어야 한다. 자기만 말하려고 하거나 자기 속은 전혀 털어놓지 않으면 이 또한 소통에 장애가 된다. 이렇게 겸상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근래 혼밥이라는 말이 생겼는가 하면,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졌다는 말도 듣는다. 누군가는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혼자 먹을 것이고, 누군가는 같이 먹는 것보다 혼자 먹는 게 편하고 즐거워서일 것이다. 어른과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예절을 배우는 데만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어, 태도를 보면서 아이가 바람직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는 보다 큰 의미가 깔려 있다. 혼밥을 하든, 누구와 겸상을 하든 그건 모두 개인의 자유의사이다.
밥상 너머에서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으로 성장한 나였다. 아버지와 겸상하여 밥 먹던 시절이 그립다. 아, 겸상 시절의 풍경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