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6,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蘭
바람에
사운대는 저 잎샐 보게
잎새에
실려오는 저 햇빛을 보게
햇빛에
묻어오는 저 향낼 맡게나
이승의
일이사 까마득 잊을 순 없지만
蘭이랑
살다보면 잊힐 날도 있겠지…
-신석정(1907~1974)
- 유재일
신석정 시인은 난초를 노래한 시 여러 편을 유작으로 남겼다. 그 시편들을 요즘의 한파 속에서 읽어 마음에 지니니 한파와 몰려오는 눈발이 수그러드는 느낌이다. 신석정 시인은 난초의 굽힌 데 없이 뻗은 '밋밋한 잎'은 건강하고도 고고하고, 꽃 빛깔은 '맑고 담담하여/ 아예 속운(俗韻)이 없'고, '손에 잡힐 듯 달려드는' 난초의 향기는 십리 너머로 나아간다고 썼다.
신석정 시인이 권한 대로 고아하고 청초한 난초를 가까이에 두어 우리의 가쁜 숨을 조금은 돌릴 일이요, 세상의 풍진(風塵)을 겪더라도 본래의 면목과 품성을 지켜나갈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소곤거리듯 들려오는 잎새의 작고 미묘한 흔들림, 그 위에 얹힌 투명한 빛, 은은하게 움직이는 향기를 보라. '고서 몇 권과 술 한 병, 그리고 난초 두서너 분이면 삼공(三公)이 부럽지 않다'고 가람 이병기도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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