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9,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
발자국 가족
쌓인 눈 위를
아빠가 걷는다
움푹움푹
아빠가 만든 발자국 안으로
엄마가 발을 디뎌 따라간다
엄마가 디딘 발자국 그대로
나도 발을 디뎌 따라간다
아빠 발자국이 엄마 발자국을
엄마 발자국이 내 발자국을
꼭꼭 껴안는다
우리 가족을 따라
꼭꼭 껴안은
발자국 가족이 자꾸만 생겨난다.
―신지영(1974~ )
- /김성규
어린 시절 눈 내리는 날은 펑펑펑 터트리는 축포와 같았다. 밤나무 숲에서 올빼미 우는 밤, 엄마한테 옛날이야기를 조르다 잠이 들면 밤새 소복이 눈이 쌓였다. 마당에 찍힌 첫 발자국은 으레 엄마 것이었다. 이른 아침 우물에 물을 길러 가거나 장독대에서 김치를 가져오려고 찍힌 엄마의 발자국은 흰 절편의 떡살무늬 같았다. 마당에는 강아지 발자국 퐁퐁퐁, 참새 발자국 짹짹짹, 아이들 발자국 폭폭폭 다정히 찍혀 있었다. 그런 날에는 기러기들도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에 발자국을 찍으며 날아가곤 했다.
가족들이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며 가는 모습이 쌓인 눈만큼이나 포근하고 정겹다. 문득 나도 그 발자국 따라가고 싶어진다. 발자국 따라가면 굴뚝에서 몽실몽실 밥 짓는 연기 나던 어린 시절 추억의 마을에 닿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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