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21,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
봄날 저녁
문득 들렀습니다 산 그림자 붉은 저녁
당신의 오래된 집도 꽃등을
달았더군요
어디쯤
걸어오실까
연신 바람은 보채고
서쪽 하늘 끝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잔약한 산새들을 보듬는 운판
소리
먼 길은
소리를 좇아
더듬어 갑니다
몇 소절 슬픔 뒤로 생각도 끊어지고
꽃잎은 너덜겅 위로 시나브로
떨어져서
저 붉은
이승의 한때
잠시 흔들리는
―김세진(1962~
)
- /유재일
봄은 짧다. 아니 짧게 느껴지는 걸까. 인생의 봄처럼, 잠깐 스친 사랑처럼. 어쩌면 꽃철이라 더 그런지도 모른다. 봄꽃이 쉬 지듯, 빨리 떠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실 봄은 짧기도 하고, 점점 짧아지기도 한다. 온난화 속 꽃샘, 잎샘이 오락가락하다 여름이 들이닥치니 봄을 잃는 느낌이다.
그런 봄날, '산 그림자 붉은 저녁'에 문득 들른 '당신의 집'은 애틋한 수채화다. 바람만 연신 보채니 꽃등을 달아놓은 당신은 어디로 간 걸까. 무심히 '운판 소리' 뒤나 좇는 허한 그림자. 혹여 당신도 나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디쯤에서 엇갈렸는지…. 잠시 흔들리는 '이승의 한때'가 먼 산의 꽃구름같이 아슴아슴하다.
봄을 누리기도 전에 떠나보낸 어린 영혼들, 온천지가 다시 붉게 우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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