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28, 조선일보]
희망 충전기
깜박깜박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졌다.
박스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할머니가 엉금엉금 끌고 가신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메고
여학생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힘겹게
기어가는 할머니 바퀴가
가방 끝에 매달린 지친 하루가
땅속으로 푹- 꺼질 것만 같은데
횡단보도 초록불빛이
힘나는
충전기였으면 좋겠다.
할머니 마음에
여학생 마음에
가득 충전되었으면 좋겠다.
-김선영
(1968~)
- /유재일
횡단보도 신호등을 충전 중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충전이 완료되면 초록불로 바뀌는 충전기로 생각한 발상이 재미있다.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면 활기찬 걸음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모두 활기차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아니다. 박스를 주워다 파는 할머니의 힘겹게 기어가듯 건너는 리어카도 있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건너가는 여학생도 있다.
이 동시는 그런 사람들에게 횡단보도 신호등 초록불빛이 힘 나는 희망 충전기였으면 하는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참 많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을 희망 충전기라고 생각한다면 횡단보도 건너는 발걸음이 한결 즐겁고 활기에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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