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일
이팝꽃 시간
여남은 살 넘어가던 옥포면 다리목
발 빠른 트럭에게
길 먼저 내어주고
넉넉히 안으로 휘어진 논둑길 걷는다
길섶은 서툰데 마중 나온 유년 봄빛
자운영 꽃대 위로 꽃비 연신
내려앉고
명치 끝 툭, 치고 가는 굵은 바람 한 줄기
이팝꽃 휜 가지가 옛 기억 줄을 내려
아슴아슴 내려간다, 고치 같은
유년의 뜰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윤채영(1950~
)
이팝꽃이 한창이다. 가로수로 가꾸는 도시도 있어 벚꽃 후의 거리가 한참 동안 또 환하다. 이팝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흐뭇하다. 흰쌀밥을 그것도
고봉으로 받은 것처럼 넉넉해진다. 조팝꽃은 잘고 푸석한 조밥 느낌의 안쓰러움이 있는데, 이팝꽃은 신수 훤히 핀 사람처럼 헌걸차게
듬직하다.
'마중 나온 유년 봄빛'도 그래서 더 '아슴아슴' 눈부셨을 거다. 꽃도 고봉이라 '휜 가지'에 기대 돌아보는 '유년의 뜰'도 하얗게 빛났을 거다. 쌀밥 추억은 옛이야기가 됐지만, 기름기 자르르한 햅쌀밥의 보얗고 보드라운 식감은 여전히 일품이다. 그러니 이팝꽃 아래 서면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시간도 얻나 보다. 이팝꽃길로 걸어간 봄날, 어느 섶을 또 아슴아슴 피우려나.
'마중 나온 유년 봄빛'도 그래서 더 '아슴아슴' 눈부셨을 거다. 꽃도 고봉이라 '휜 가지'에 기대 돌아보는 '유년의 뜰'도 하얗게 빛났을 거다. 쌀밥 추억은 옛이야기가 됐지만, 기름기 자르르한 햅쌀밥의 보얗고 보드라운 식감은 여전히 일품이다. 그러니 이팝꽃 아래 서면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시간도 얻나 보다. 이팝꽃길로 걸어간 봄날, 어느 섶을 또 아슴아슴 피우려나.
[2014.5.1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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