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0,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
붓꽃
하굣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힘껏 뛰었다
게임방 입구에서 잠시 피했다가
다시 뛰었다
피자 집 담벼락에 붓꽃 한 송이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고 있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때리는데도
눈을 감고 꿋꿋이 이겨내고 있었다
나도 뛰던 걸음을 멈추고
붓꽃이 되어 서 있어 보았다
멀리 골목 어귀에서
엄마가 우산을 들고
붓꽃처럼 웃고 서 있었다
―최명란 (1963~)
- /유재일
그러나 소나기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이 동시에 나오듯 하굣길에 갑자기 만나면 큰 낭패다. 소나기를 피해 힘껏 뛰다가 아이는 비를 맞고 있는 붓꽃을 본다. 세찬 빗줄기에도 눈을 감고 꿋꿋이 이겨내고 있는 붓꽃을 보고 아이는 붓꽃처럼 서 있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또한 이럴 터이다. 뜻밖에 소나기를 만나듯 힘들고 괴로운 일과 마주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우리도 붓꽃처럼 꿋꿋이 서 있어 보자. 그러면 소나기 굵은 빗방울은 우리 마음속에 알알이 씨앗으로 여물어 가리라.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