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파는 시인 팔공산에 가을이 한창인 날이었다. 직장에서 갓 퇴직한 K시인이 못을 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직장생활 틈틈이 시만 지어온 사람에게서 들려온 이 생뚱맞은 소식이야말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괭이와 삽을 번갈아들며 땀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과, 그가 파고 있는 .. 나의 수필세계 2016.02.26
껭짱러이 껭짱러이 그것에 대한 갈증이 상존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언제쯤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는데 마침내 멋진 기회가 주어졌다. 마음이 잘 맞는 3쌍의 남녀가 일행이 되어 나섰다. 다소 긴 여정으로 묵직해진 짐.. 나의 수필세계 2015.11.07
토종밤 주변의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 크기와 수량은 물론이고 색깔이며 맛이 예전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종자를 개량한 때문이다. 이들을 먹으면서도 토종을 개량하였으니 당연히 토종은 못하고 개량종은 좋다고 무작정 생각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 나의 수필세계 2015.09.24
나에게도 고향이 있었지 마흔 한 살의 도연명이 직장을 팽개치고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귀거래사’를 읊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이다. 굳이 도연명의 흉내를 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철이 든 이후 직장 따라 객지를 떠돌면서 나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버리지 않았.. 나의 수필세계 2015.09.18
가을, 편지를 쓴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자대에 배치된 다음 날 전역하는 W병장은 예비군복을 입고 ‘편지’라는 제목의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그때는 3년으로 정해진 내 군대생활 시작 무렵인지라 손을 흔들며 연병장을 가로질러 위병소로 걸어가는 모습은 별로 부럽지도 않.. 나의 수필세계 2015.08.15
때 늦은 반성문 어제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딸과 사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늘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다들 어버이날이라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전화를 걸면서 잠시라도 부모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이고, 나도 전화를 받고서 그런 아이들을 기특해 하며 .. 나의 수필세계 2015.05.16
계림에서 보내는 편지 K형.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오는 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뒤로하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아파트 앞 양지에는 매화가 벙글어 있었고, 쑥이며 달래가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연한 봄에 젖어들려는 찰라 방해꾼이 성큼 나타났지 뭡니까. 봄.. 나의 수필세계 2015.04.14
카친들과 행복하기 누구나 전화기와 카메라를 하나씩 가지고 다닌다. 길을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기도 하고, 자동차를 차고 이동하면서 전화를 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멋진 피사체가 보이면 즉시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관광지에 가보면 2014년 최고 발명품 중 하나라는 셀카봉을 이용하여 사진.. 나의 수필세계 2015.04.03
봄, 긍정으로 다가서기 가만히 앉아 봄을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꽃집에 가서 수선화를 한 분 사왔다. 튼실한 꽃대가 이파리 속에 숨어 있었는데 베란다에 두고 오가며 기다리고 있는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서둘러 꽃망울이 터졌다. 늦은 저녁인데도 맑고 노란 꽃잎이 벙글어 올랐다. 갖 핀 수선화를 두고 잠자리.. 나의 수필세계 2015.03.07
잔인한 3월이여! [2015.3.2, 경북도민일보] 잔인한 3월이여! 지난 설날 외손자 녀석이 제 부모와 함께 왔다.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여덟 살짜리 아이다. 제 어미는 새배를 하고 일어서는 아이에게 맛있는 것이나 주면서 먹고 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안으로 몰아넣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이.. 나의 수필세계 201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