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껭짱러이

죽장 2015. 11. 7. 12:12

 

 

 

껭짱러이

 

  그것에 대한 갈증이 상존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언제쯤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는데 마침내 멋진 기회가 주어졌다. 마음이 잘 맞는 3쌍의 남녀가 일행이 되어 나섰다. 다소 긴 여정으로 묵직해진 짐이었지만 가볍게 들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출발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최상의 조건이었다. 사전 예약이 필요 없으니 도착하는 시간에 언제나 가능했다. 가격도 절반 이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1인당 1명의 조력자를 동반하고 움직였다. 운전대를 잡은 조력자는 능숙한 솜씨로 필요로 하는 곳 어떤 위치에도 데려다 주었다. 그 뿐 아니라 특히 좋았던 것은 앞에도 뒤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진행 속도에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조력자와 의사소통이 다소 어렵다는 점이나, 좀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점을 충분히 극복한 탓에 ‘매우 만족’ 이상이었다. 조력자 그녀는 전문직업인답게 항상 공손한 자세와 웃는 표정으로 대해주었다. 받는 댓가의 크기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고마워하였다. 가슴에 두 손을 반듯하게 모으고 예를 표시하니 불평불만이 있을 리 없다.

  나는 그들의 언어에 완전 무식이지만 조력자는 자신의 의사를 잘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 중 하나가 ‘껭짱러이’라는 단어다. 잘했다거나 좋다는 의미로 칭찬이나 격려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 짐작한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 올라서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시 다음 동작을 생각한다. 그 후 양팔을 한껏 치켜 올렸다가 허공을 가르며 내리친다. 막대기가 공을 정통으로 때리는 맑은 소리가 뒤따른다. 이 때 ‘껭짱러~이’를 외치는 조력자의 음성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 나의 기분도 하늘 높이 상승곡선을 이루게 된다.

  그날이 며칠 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은 조력자를 사전 선택할 수 있음을 알고 동일한 곳에서 전날의 그녀를 선택한 적이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놀라며 반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그날 ‘껭짱러~이’를 참 많이도 외쳐주었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공을 보며 귓전을 울렸던 그 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시간이었다.

  사람 사이가 참으로 묘하다. 난생 처음 만나 몇 마디 서툰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인 데도 통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게 주인과 주고받은 한 두 마디 대화에 물건을 살 수도 있고 그냥 나올 수도 있다. 식당 종업원의 태도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오면 저절로 통하게 되는 것이 사람 사이다. 눈빛이 따스하면 마음도 고우리라 짐작한다. 이방인에게 ‘껭짱러이’를 목청껏 외쳐주던 그날의 조력자가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

  여러 날 반복된 강행군으로 그동안 지독하게 쌓였던 갈증은 해소되었다. 몸의 갈증은 코코넛 몇 방울로 해소시켰고, 정신의 갈증은 낭랑한 음성의 ‘껭짱러이’로 풀렸다. 그러나 이웃 사람에게 통하고, 세상에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사통팔달 통하는 사람이 되어 갈증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은 손꼽아 본다. 내 스스로를 향해 마음이 통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묻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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