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토종밤

죽장 2015. 9. 24. 19:50

  주변의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 크기와 수량은 물론이고 색깔이며 맛이 예전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종자를 개량한 때문이다. 이들을 먹으면서도 토종을 개량하였으니 당연히 토종은 못하고 개량종은 좋다고 무작정 생각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변화 발전하는 세상에 토종을 고집한다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비록 개량종이 대세인 시대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토종닭이며 토종꿀을 찾는다. 대추, 밤도 토종이 더 맛있다.

  추석을 앞 둔 일요일, 고향마을 뒷산에 있는 조상들의 묘에 벌초를 하러 갔었다. 타지에 살고 있는 동생과 조카들이 일찍 도착하여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예초기를 맨 동생, 낫으로 잔풀들을 정리하고, 이를 갈퀴로 끌어내는 조카들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준비해온 과일과 술을 상석에 진설해놓고 후손들이 나란히 서서 절을 하는 것으로 그날의 벌초 행사는 끝이 났다.

  산을 내려오는 데, 뭔가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토리겠지 생각하며 눈길을 돌려 살펴보니 알밤 한 톨이었다. 크기는 겨우 손톱만 했지만 아주 잘 여문 것이 나는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밤 한 톨을 집어 들고 생각에 젖었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의 나뭇지게에 종종 매달려 있던 바로 그 밤이다. 밤송이 같은 머리카락을 가졌던 소년의 머리에 무서리가 내린 긴 세월을 밤나무 홀로 산소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는 아무도 줍지 않아서 그런지 알밤이 꽤나 많이 떨어져 있었다. 잠시 주운 것이 호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우고도 남았다.

  밤은 오래 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밤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잎이 자라 마침내 큰 나무로 성장하지만 신기하게도 자신의 나무에서 열매가 맺기 전에는 씨가 되었던 밤은 썩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죽어 저승에서도 오로지 자손의 번창과 자식의 행복만을 기원하고 있을 부모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들 후손은 밤의 생육상태를 조상과의 영원한 연결로 의미화하여 제사상에 올린다고 한다. 또 혼례식을 마치고 폐백을 할 때도 밤은 빠지지 않는다. 며느리는 공경과 장수하시라는 뜻으로 시어른에게, 시어른은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며느리인 신부에게 밤을 던져준다.

  벌초를 했던 그날 저녁 산소 옆에서 주워온 밤을 삶았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개량밤보다 크기가 작아 성가신 면은 있지만 맛은 훨씬 더 좋다. 밤을 먹으면서 모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했음은 물론이다. 아버지의 기대만큼 대단한 출세를 하지는 못했지만 토종밤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추석에 사용하고 남은 토종밤은 남겨두었다가 눈 내리는 겨울에 군밤으로 먹을 작정이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밤은 또 한 번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눈을 맞으며 산과 들로 뛰어다니던 유년시절의 겨울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나의 수필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못을 파는 시인  (0) 2016.02.26
껭짱러이  (0) 2015.11.07
나에게도 고향이 있었지  (0) 2015.09.18
가을, 편지를 쓴다  (0) 2015.08.15
때 늦은 반성문  (0) 201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