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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오월도 중순이 넘어가면 들판의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예전 같으면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다. 몇 해 전부터 이맘때만 되면 그 귀한 쌀을 한 포대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예”라는 단 한 문장으로 일 년만의 안부를 떼우며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는 사나이다. 온몸에서 순박한 끼가 줄줄 흐르는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빈손으로 나타나서 자기 집에 잠깐 다녀가라는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집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창고에서 정미기(精米機)를 돌리고 있다가 맞아주며 앞장서서 텃밭으로 간다. 뒤따라가니 열무, 상추이파리가 반겨준다.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쑥갓, 청경채, 케일, 치커리도 아는..

카테고리 없음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