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9년(1795년) 2월 정약용에게 병조참의에 제수했다.
윤 2월 9일 정조는 화성에서 개최되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에
정약용의 호위를 받으며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으로 출발하였다.
억울하게 돌아간 부친 사도세자의 한을 안고 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어의가 젖는 줄도 모르고 어머니가 탄 가마 앞으로 가서 안부를 물었다.
“오늘 온 비에 군병들의 옷이 젖은 것은 민망한 일이지만
비가 잠깐 왔다가 개면서 앞길을 깨끗이 청소해 주었다”며 기뻐하였다.
화성 행궁의 내전에서의 회갑연에서
영의정 홍낙성을 비롯해 참석한 70세 이상과 61세가 되는 벼슬아치들에게
각각 비단 한 필과 누런 명주를 주었고,
현릉원 밑에 거주하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2년동안 세금을 면제해 주었으며,
수원부 성 내·외에 사는 백성들에도 1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쌀을 나누어 주었다.
이튿날 신풍루에 나아가 수원부의 가난한 사민 539명에게 200여석의 미곡을 나누어주고
진휼대상인 4,800여명의 백성에게 미곡과 미역·소금·간장 등을 나누어 주었다.
정조는 이번 행사를 백성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로 이용했다.
정약용은 정조가 화성에 가기 전날
‘선화(扇和, 부채바람)’라는 군호를 지었다가 퇴짜를 맞은 후
아흔 아홉번이나 고쳐지은 후 ‘만세(萬歲)’로 재가를 받았다.
다시 ‘폐하께서는 만세의 수를 누리고 신은 이천석(二千石)이 되었다’는 어제로
새벽 문 열 때까지 칠언배율(七言排律)로 100운의 시를 지어 올리라 했다.
그 짧은 시간에 100운의 시를 지으라는 불가능한 명령을 정약용은 해내었다.
정조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며 칭찬했다.
어진 임금과 당대 최고의 문장가!
얼마나 멋진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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