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8년(1794년)에
정6품 홍문관 수찬으로 있는 정약용을
밤중에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절을 하고 나니,
봉서(封書)와 사목(事目), 그리고 마패(馬牌)와 유척(鍮尺)을 내렸다.
31살의 정약용에게 암행어사에 제수한다는 뜻이었다.
봉서의 겉에는
도동대문외개탁(到東大門外開坼) 즉 동대문 밖에서 열어보라는 내용이며,
사목은 임무로써 흉년에 감해준 조세를
수령이 사사롭게 쓰거나 아전들이 훔치지 않았는지 살펴보라는 내용 등이며,
마패는 둘을 받았는데 말 세 필을 새긴 마패는 본인이 갖고,
한 필을 새긴 단마패는 따라다니는 아전인 서리에게 주었다.
1974년 10월 29일부터 11월 15일까지
적성, 마전 등 네 고을을 돌아온 다음 복명한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은
그가 암행어사의 역할에 얼마나 철저하게 임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짧은 암행어사 기간 중에
경기감사 서용복을 고발한 건으로 인하여
정조 사후 처절한 보복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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