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연꽃 앞에서

죽장 2006. 7. 14. 08:34
 

연꽃 앞에서


  연꽃은 여름 내내 연한 분홍색 또는 백색의 꽃을 피운다. 더러운 진흙탕에서도 맑고 고귀한 꽃을 피우는 연꽃은 많은 씨앗을 가지고 있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연은 뻘에 강인한 뿌리를 뻗어 내리고 줄기는 물 위를 뚫고 나와 꽃을 피운다.


  어느 날 부처님이 설법은 하시지 않고 곁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는데 제자 중에 가섭존자만 홀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속속들이 전하는 도리로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법(妙法)'이라는 말로 전해오고 있다.

 

  연꽃은 깨끗한 물이 아니고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연밥이 달린다. 연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이 인과(因果)의 도리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해석되어 연꽃이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되어 있다.

 

  중생들은 인과의 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온갖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 불가의 생각이다. 자신이 짓는 온갖 행위에 대한 과보를, 마치 연꽃 속에 들어 있는 연밥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아무도 악의 씨를 뿌리려 하지 않을 것이며 죄의 꽃도 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인과의 섭리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꽃이 바로 연꽃이다.

 

  사랑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부여의 궁남지에 갔었다. 백제 무왕이 궁성 남쪽에 축조했다는 바로 그 연못이다. 무왕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신라에서 데려온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었기에 이른바 ‘사랑의 연못’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운명적인 사랑을 재조명하는데 연꽃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은은한 연향이 궁남지의 수면에 잔잔하게 퍼지고 있는 가운데 한 쌍의 남녀가 포룡정 나무다리 위를 다정히 걸어온다. 마치 1400여 년 전 서동과 선화공주가 만들었던 꿈결 같은 사랑을 보는 것 같다. 부여의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주 덕진공원과, 영양 입암의 서석지와 경주 남산기슭의 서출지도 연이 자라고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 보다도 신라불교 초전지로 알려진 구미 도리사 초입의 연지(蓮池)를 빼놓을 수 없어 장마가 지나간 칠월 하순 어느 하루를 잡아 연지로 향했다.

 

  뭉개구름 흘러가는 하늘 아래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나락논에 백로 두어 마리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못뚝에 올라서자마자 연이파리가 전신을 흔들며 환영해 준다. 연분홍 연꽃이 여기저기 수줍게 피어 있다. 사람의 손길에 잘 다듬어진 연못이 아니라 온갖 잡풀들과 어울려 자라고 있는 신라시절의 연지에서 인과를 설파하신 부처님을 만나고, 사랑을 속삭였던 서동과 선화공주도 만난다.

 

  해질녘 집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베란다에 자라고 있는 연꽃을 바라보니 들판의 연못에서 만났던 부처나, 선화공주가 아니라 연꽃을 닮은 단 한사람이 다가온다. 연꽃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내오고 연꽃을 닮은 그녀는 이심전심의 마음을 전해온다.


    진흙탕도 마다않는 연꽃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게 하는 연꽃이

    부여에서 국경을 넘는 사랑으로 피어 있다.

    백로와 함께 신라불교 초전지를 지키고 있다.

    내, 마당에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가꾸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베란다 귀퉁이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만나고

    이심전심에 빠져든다.

    연꽃 피는 칠월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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