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을 설치고 출근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G조 예선 2차전인 프랑스와의 일전 때문이었다. 음성도 다소 가라앉아 있었고, 육신이 약간은 피곤한 듯 하였지만 견딜만 했다. 눈을 감아도 붉은 악마들이 벌이는 굿판이 왕왕거리고, 눈을 떠도 악마들의 난동은 멈춰지지 않는다. 몇 시간 전의 흥분이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거리응원장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환호의 함성이 멈추지 않은 전후반 90분이었다. 토고전이 벌어졌던 프랑크푸르트 경기장과 프랑스전이 벌어진 라이프치히 경기장, 그리고 서울시청 앞 광장과 상암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 응원장이 한결같이 붉은 악마들이 점령해 있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지구촌 어디나 붉은 악마들은 축제를 열었다. 잠이 없는 악마들은 밤을 새우고 있다. 크고 작은 악마들 모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새벽 4시에 맞춰둔 자명종이 울리자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한국은 경기 시작 9분 만에 한 골을 내주고 끌려 다니고 있었다. 졸음이 슬며시 다가왔다. 함성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경기 시간이 다하기 9분 전인 후반 36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지성이 프랑스의 골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앉아 있던 붉은악마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벌떡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의 언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황당한 비명소리가 축제장을 가득 메웠다. 밤을 하얗게 밝힌 국민들의 바람이 아쉬움에 지쳐 갈 무렵 설기현의 그림 같은 크로스, 조재진의 헤딩 어시스트, 그리고 박지성의 골이 터졌다. 한국은 19일 새벽 월드컵 G조 2차전에서 1998년 챔피언 프랑스를 밀쳐내며 16강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가볍고 둥근 축구공 하나가 우리 모두의 꿈과 자존심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잡초처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몇 차례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가슴을 울려대는 북소리와 함께 응원 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한국 축구는 이제 자신을 키우고 사랑했던 나라와 국민에게 자신감과 함께 우리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되돌려 주고 있다.
행복한 월요일이다. ‘꿈은 또 이루어진다’고 했다.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는 말은 ‘박지성 어록’에 기록된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의 의지요, 모든 응원자들의 기대이다. 16강 등성이를 넘는 길목에 스위스 한 팀이 남았다. 승전보가 전해질 행복한 토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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