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버리고 가벼워지기

죽장 2006. 8. 4. 17:47
 

  많은 것을 버렸다. 고향의 단독주택에서 도회지의 아파트로 옮기는 이삿짐을 싸면서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만 가져가기로 아내와 사전 약속을 했다. 버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이번에는 그야말로 꼭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 외에는 몽땅 버리는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사실 그랬다. 이사를 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에 쳐박혀 있는 세간을 꺼내보면 수년간 한번도 만져보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여태껏 없어도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서, 아니면 언젠가는 효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계속 간직해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먼저 서가에 꽂혀있는 책 중에서 버릴 것을 가려내었다. 귀하거나 귀하지 않은 책의 구별이 없지만 그 중에서 가져가지 않을 책의 표지를 넘겨 보았다. 작가의 친필 서명이며 소중한 사연들을 하나하나 읽고 묵상한 후 내 품에서 떠나보냈다. 피와 살 같이 귀한 책들이었다.

 

  다음은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재봉틀이며, 머리를 가다듬던 참빗을 버렸다. 길쌈하시던 바디, 아버지가 지은 곡식을 계량하던 말까지도 버리는 짐 무더기에 던져 넣었다. 마지막까지 보관해온 부모님의 유품이다. 마치 잊혀져 가는 부모님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기라도 하듯이 던져버렸다.

 

  또 쌓아둔 상패와 기념패들을 버렸다. 각종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한 상패들에는 그날의 환희와 박수갈채가 묻어있다. 책을 출판하면서 기념으로 받은 것에는 그 무렵의 내 문학정신이 반짝이고 있다. 재직하고 있던 직장을 떠나면서 받은 것에는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에게 받았던 석별의 아쉬움이 살아 있다.

 

  피아노를 버렸다. 가난하던 시절 거금을 들여 산 피아노는 꼬맹이 딸아이가 까치발로 올라 귀여운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것이었다. 시집갈 때 가져가려니 했었지만 버리는 마음의 무게가 피아노만큼이나 무거웠다.

 

  마침내 버릴 것은 다 버렸다. 대문을 나서면서 돌아보니 정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노을을 바라보며 앉았던 바위며, 드러누워 개구리소리 듣던 잔디밭이 눈을 찌른다. 철철이 꽃과 열매를 달아주던 감나무, 석류나무가, 사철 한결같은 마음을 전해주던 소나무, 향나무, 주목, 오죽이, 짙은 향기를 잃지 않던 목련, 장미, 모란, 라일락, 백합이, 언제나 내 정서에 화답해주던 메발톱, 금낭화, 패랭이, 벌개미취, 은방울꽃, 할미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주인의 배신을 되새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난 분명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배신자임에 틀림없다. 오늘 무엇이 나를 배신자로 만들었을까? 편리를 추구하려는 마음, 시속을 따라 변해가는 마음이 그렇게 했다. 삶의 무게가 부담이 되는 나이가 원인이었다. 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이라는 내 가벼움이 그런 선택을 하였다. 젊을 때와는 달리 모래밭의 물처럼 잦아든 의욕이며, 늘어난 게으름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탓이다. 구차한 변명을 더 보탠다면 이제 인생의 종착점이 저만치 보이는 길목에서 소유하고 있는 짐을 줄여 가볍게 걸어가고 싶어서다.

 

  버리고 온 덕분에 아주 가벼워졌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나의 과거를 버리고, 오롯한 꿈이 담긴 아이의 과거도 버렸다. 펼쳐지지 않는 책은 이미 책이 아니었고,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들은 오로지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이 전부였을 뿐이다. 소용이 없어 버린 아픔은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소중한 추억까지 버린 가벼움은 결코 진정한 가벼움이 아니다. 뭔가 묵직한 덩어리가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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