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영남수필문학회 월례회에서의 일이었다. 작품을 합평하는 과정에서 사후에 화장을 할 것인가, 매장을 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원로회원 한 분의 말씀이 있었다. 연세가 팔순이 넘은 그 분은 문중의 산에 납골당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비좁은 국토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장을 해야 하기는 하나, 대를 이어 조상을 섬기는 화목한 집안에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인간미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인간의 사후 문제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음직한 화두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다음 날 부모님 묘소에 가게 되었다. 마침 봄이 한창인 날이어서 겨울을 이긴 금잔디 위에 봄볕이 따사롭게 머물고 있다. 나무에서도, 땅에서도 온통 파릇파릇하게 새싹이 돋고 있었다. 산수유와 진달래가 한창이었고, 제비꽃과 복수초도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진달래를 한 묶음 꺾었다.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 진달래를 꺾어와 집안에 꽂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날 어머니는 실내에 들여온 봄 냄새를 맡으며 까까머리 꼬마의 머리를 쓸어 주셨는데, 오늘은 반백의 사내가 진달래꽃을 어머니의 무덤 앞에 꺾어놓고 긴 묵상에 잠겨 있다. 꿀벌 한 마리가 날아와 꽃에 앉으려고 맴을 돈다. 줄무늬 다람쥐 한마리가 쪼르르 다가와 눈을 깜박거리고 쳐다보고 있다. 저들도 말이 없고 나도 말없이 앉아 있다. 저들도 나를 바라보고 나도 저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고 느껴졌다.
꽃이며, 꿀벌이며, 다람쥐의 존재는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여기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영혼이 저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자식을 반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나도 훗날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인가?
꽃이 되고 싶다. 이른 봄 진달래꽃으로 피어나 세상에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다. 벌이 되고 싶다. 날카로운 침은 감추고 오로지 달콤함을 선물하고 싶다. 다람쥐가 되고 싶다. 양쪽 볼 가득 도토리를 채우며 부지런히 겨울채비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