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선주문학 25호의 수필작품평

죽장 2006. 4. 11. 08:06
 

선주문학 25호에 실린 회원들의 수필작품



  선주문학 25호에 실린 회원의 수필은 견일영의 「슬픈 고향」, 김상환의 「까치 소리」와 「어린 날의 초상」, 김수종의 「통일의 단상(斷想)」과 「밥맛」, 노주형의 「덕(德)에 대하여」와 「길에 서서」, 서순원의 「작은 만남」, 이인호의 「머문 자리 빈자리」, 이일배의 「길 찾아 나서기」, 「마성의 봄(1)」, 「전원 가족」, 「마성에서 맞는 생일」, 이종숙의 「갑사 가는 길」, 장해순의 「백우산을 헤매다」와 「엄마와 이모」, 조명래의 「에페소, 카파도기아 그리고 투즈켈레」, 한지영의 「편지」, 「결혼」 등 총 19편이다.


  견일영의 「슬픈 고향」은 선산출신의 나이 지긋한 사람의 냄새가 풍긴다. 『감천강 다리를 건너 선산읍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라는 첫 구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선산이라는 지명이며, 추억이며, 고향이며, 가족들의 모습들을 연상하게 한다. 『겨울 앞자락의 낙엽이 뚝뚝 떨어지던 날, 죽장사 입구에 서서 수취인도 없는 긴긴 사연을 내 가슴에 갈겨쓴다』라고 한 마지막에서 서글픈 모습일 수밖에 고향의 풍경이 읽혀지는 작품이다. 수필은 연륜에서 나온다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장천면 출신으로 마산에 살고 있는 수필가 김상환의 「까치 소리」에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며,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다. 객지에서의 삶 때문에 설날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독서실을 지키고 있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외사촌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는 마음인 듯하다. 까치소리를 통해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글에서, 배나무와 감나무, 서당, 까치설날, 소지왕, 딸깍발이 등등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소품들을 등장시켜서 다소 어지럽다.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져 아이들의 발걸음이 뚝 멈추었을 때에도 감나무 꼭대기에는 벌겋게 후끈거리는 까치밥이 남아 있어, 안온하고 포근했던 어린 우리들의 가슴에 풀 길 없는 화두(話頭)였다.』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린 날의 초상화」는 외손자를 보면서 어린 날, 장난이 심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글로써, 손자의 고사리 손에서 혈육의 정을 느끼고 있는 작자는 어찌할 수 없는 이순의 할아버지이다.


  김수종은 「통일의 단상」에서 우리 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토가 분단된 현실적인 비극은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한 약소민족이기 때문에 겪는 어찌할 수 없는 설움 그 자체임을 자각하고, 아랍과 이스라엘 간에 수 천 년에 걸친 다툼과 반목을 보면서 민족적 교훈을 얻는다. 「밥맛」은 어린시절의 가난이 배경이다. 쌀이 귀하던 지난날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의 밥맛이 역사책처럼 빛바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작가의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밥맛의 요건들을 입으로서가 아니라 몸으로서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도 쌀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표현해 낼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김수종의 글에서는 문장과 문장에서 얻게 되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아니라 굵은 의식의 선과 만날 수 있다. 수필의 기교보다는 소리없이 흐르고 있는 깊은 강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노주형의 「덕(德)에 대하여」는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노담(老聸)의 도덕경(道德經),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같은 선현의 글에 나타난 덕을 기술하고 있으며, 벤자민 프랭클린의 덕의 기술 13가지를 요약하고 있다. 또 「길에 서서」는 생활의 철학이나 살면서 지키고 행해야 할 금언들을 기술해 놓은 글이다.


  서순원의 「작은 만남」에서는 섬세한 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봄에 피어나는 들꽃, 여름날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밤하늘의 별, 귀뚜라미 소리와 단풍 찬란한 가을의 정경, 흰눈 내리는 겨울 풍경과 같은 것들이 가슴을 파고들며 낮은 소리로 속삭여 준다. 행복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작은 것들과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아주 낮은 곳에서 가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는 진실에의 고백이 작품을 반짝이게 한다.


  이인호의 「머문 자리 빈자리」는 애완견 ‘요롱’이의 이야기다. 영리한 개와 정을 나누며 가족같이 살아온 것이 10년 세월이다. 영원히 헤어지는 슬픔이 절절이 베여 있다. 함께 할 때의 사연이 애틋할수록 헤어지는 아픔이 클 것이다. 머물었던 빈자리가 크고 허전할 것이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그 마음이 한편의 수필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이일배는 문경시 마성면에서 근무하면서 연작수필 “마성일기”를 빚어가고 있다. 이번 선주문학에 실린 작품은 그 중 4편으로 마성일기·2·7·15·22번으로, 「길 찾아 나사기」, 「마성의 봄(1)」, 「전원가족」, 「마성에서 맞는 생일」 등이다. 평소 숙련된 유려한 필치에 긴 호흡으로 다듬어 가고 있다. 누에가 비단실을 토해내듯이 마성에서의 삶 자체가 매끄럽게 수필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울릉도에 근무하면서 수필집 『마가목 붉은 열매』를 펴낸 전력에 비춰볼 때, 곧 마성에서 쓴 수필집이 한권 나오리라 기대된다.

  ‘마성일기·2’는 제목처럼 마성(痲城)이란 지명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걸어서 일대를 답사하면서 마성을 즐길 작정으로 있다. '어떤 경우에 처하든 그것의 처지에 맞게 행하라는 말처럼 다가온 상황을 즐길' 마음의 여유를 누리며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마성일기·7’은 마성에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더디 온 마성의 봄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희망과 기도를 데불고 오느라 늦을 수밖에 없는 봄을 맞고 있다. ‘마성일기·15’는 학교주변의 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심어 가꾸는 그림 같은 전원풍경을 그리고 있다. 새소리도 공으로 들으며, 파리하고도 친구가 되며 드디어는 마성이라는 지역 전체가 어울려 친구처럼,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 ‘마성일기·22’는 마성에서 살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가운데 생일을 맞는다. 생후 처음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는 아주 특별한 생일을-.


  이종숙의 「갑사 가는 길」을 읽고 주문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말을 보다 쉬운 문장으로 표현했으면 하는 점이다. 읽는 사람이 몇 번씩이나 되짚어 읽어야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짜여진 문장은 피해야 할 것이다. 첫 도입부의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 같은 봄바람이 잠든 나뭇가지를 깨워서 꽃을 피웠다는 걸 알고, 마음 가득 난로 지피던 봄이 지났다. 이제 따가운 여름 햇살도 수풀 사이에 숨어서 익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는 가을날이다. 아름다운 이별의 빛깔로 성장한 수풀 사이, 익은 햇살의 향기가 느리게 걸어 다니고 우리가 추억해야 할 시간들도 덩달아 축제를 연다.』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보았지만 이해가 얼른 되지 않는다. 작가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미약하다. 시누이와 갑사를 다녀오면서 느낀 혈육의 정인지? 갑사주변의 풍경인지?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장해순의 「백우산을 헤매다」역시 주제가 미약하다. 백우산 등산 후 내려오면서 길을 잃어 고생한 이야기인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말하려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여 읽는 이들의 공감을 사야 한다. 또 분명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쌓아야 하겠다. 첫 구절 『이틀씩이나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그쳤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도, 오늘 산행에도 도움이 안되니 정말 다행이다.』마지막 부분의 『아무래도 좋다. 나무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사람들도 저 혼자 앞만 보고 걷지 말고 때로는 옆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만 탓하지 말고, 입버릇처럼 하는 사는 게 바빠서라는 말도 힘들지만 ‘잠시’로 바꿔 보자』와 같은 표현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엄마와 이모」를 읽고는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엄마와 닮은 이모이야기며, 어머니의 생신에 모시는 얘기만 가지고는 한편의 수필로 너무 단조롭다. 또 마지막 부분의 『자식들 편히 살아가라고 당신 위해 쓰는 돈은 극구 사양하시느라 틀니도 없으시니 질긴 고기를 드실 리 만무고, 멀미가 심하시니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차를 못 타시니 안 될 일이다』라는 문장도 다듬어져야할 것이다.


  조명래의 「에페소, 카파도기아 그리고 투즈켈레」는 터키여행 후의 느낀 점들을 적은 기행수필이다. 한 지역을 돌아보고 특별히 남는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도 수필이다.


  한지영의 「편지」는 대화체로 시작하는 유일한 작품이다. 『서른아홉의 내 가을에게 편지 한 통 써보리라』라는 표현에 신선미가 돋보인다. 컴퓨터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편지쓰기를 기피하는 요즘, 제목이 그러하듯이 요즘 사람답지 않게 작가의 삶에서 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전학 가는 친구에게 전해준 편지를 가방에 넣고 떠난 작가는 요즘 학생들에게 전해줄 『e-아침편지』를 쓰고 있다. 「결혼」에서도 작가의 반짝이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저는 그 깨어진 조각 하나 가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만 있을 뿐이었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또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 부모가 만들어준 아픈 상처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치부로서가 아니라 지금은 세 아이의 어머니로, 착한 며느리로, 매사에 열심인 지어미가 되어 작품의 전편을 잔잔히 채워주고 있다. 이것이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아닌가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수필들을 읽으면서 특별히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인호의 「머문 자리 빈자리」, 노주형의 「덕(德)에 대하여」, 김상환의 「어린 날의 초상화」를 읽으면서 문단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소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볼 때, 이종숙, 장해순의 수필에서는 이 점이 다소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 작가의 지식을 과시하는 심오한 내용이나, 의도성이 짙은 작품은 수필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일상에서나 흔히 있는 평범한 내용이거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 빼어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같은 등산을 하면서도 느낌은 각자가 다른 것처럼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작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수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수필에서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최소한 한마디쯤이라도 들어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작품과 무관한 얘기지만 작품의 편수나 량을 지적하고 싶다. 편집팀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와 수필의 제출편수를 정하여 안내하고 있다. 제한된 편수 이내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초과하는 경우를 고려해봐야 한다. 이번 선주문학 25호에 회원 전체의 수필 총 86페이지 중에서 조명래와 이일배 두 사람이 35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음은 제고되어야 할 것이며, 박태환의 특집도 무려 51페이지로 전체 310페이지의 16%가 넘는 점 등은 추후 편집방향의 확정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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