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큰 나무의 역사

죽장 2006. 3. 15. 17:06
   누구나 자기의 고향에는 자랑스러운 뭔가가 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의 자랑꺼리는 동네 입구 백여 평 남짓한 넓이의 공터에 서있는 아주 큰 소나무와 참나무로, 어른들 몇 명이서 팔을 벌려 맞잡아야 겨우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굵기이다. 아득한 옛날 양지바른 이 곳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물맛이 그만인 공동우물 옆에 나무를 심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 누구도 이 나무의 나이가 얼마인지를 알지 못했다.

 

  여름이면 짙은 그늘을 만들어 마을 사람 모두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마을의 공동집회도 늘 이 나무 아래에서 열리고는 했다. 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나무는 어느 시대에 누가 살았는지를 죄다 알고 있는 마을의 역사이다. 나무는 입이 없어 침묵하고 있지만 어느 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고 있는 증언자이다.

 

  나무에는 사람들이 오르내렸던 흔적으로 반질반직하게 길이 나 있었다. 간혹 아이들이 올라갔다가 실족하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조상들이 돌봐준 덕택에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또 해마다 오월 단오 무렵이면 옆으로 뻗은 참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어놓고 남여노소가 함께 타며 즐겼다. 마을의 아이들은 이 큰 나무 아래에서 놀며 자라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이 낳은 아이들 역시도 여전히 큰 나무 아래에서 놀며 어른으로 성장하였으니, 이른바 큰 나무는 동네사람들에게 있어 대대손손 놀이공간이 되어 주었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도 추억의 나무이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소나무의 어디쯤에 옹이가 있고, 어디의 가지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참나무의 어디를 잡고 어떻게 올라갔으며, 어느 가지 아래 집게벌레의 둥지가 있는지도 기억해 낼 수 있다. 소년시절 객지에서 공부하다가 고향집을 지키고 계시는 엄마가 보고 싶어 갑자기 찾아왔을 때도 나무가 먼저 반겨 주었고, 어른이 되어서 도회지의 팍팍한 인심이 몹시도 서러워 무작정 달려온 그 날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맞아주었다. 이렇듯 고향하면 동구 밖의 튼실한 나무 두 그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고향을 떠난 지도 수 십 년이 넘고 보니, 기쁠 때도 찾고, 슬플 때도 찾던 고향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온통 낯선 사람들만 살고 있는 고향마을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가끔씩 마을 앞길을 지나칠 때도 있지만 그냥 덤덤하기만 했다. 어린 시절 날마다 함께했던 큰 나무들이 있건 없건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 되었고, 소나무가 있건, 느티나무가 있건 나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부모형제가 살지 않고, 친구들이 떠나고 없는 고향은 단순히 고향이라는 이름의 무늬일 뿐 현실의 삶에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어느 날 고향의 큰 나무가 바뀌어 있었다. 추억어린 소나무, 참나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허벅지 굵기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새로운 주인인 양 버티고 있는 것이다. 큰 나무가 없음을 알고 나니 무척이나 서운했다. 희미해져가던 고향이 갑자기 아주 선명한 영상으로 되살아났다.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고,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소꿉장난 하던 옆집의 소녀가 그리워진다.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허전해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향의 상징이었던 큰 나무가 없어진 탓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무가 없는 곳은 이미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늙어 쇠퇴해진 나무가 점점 썩어 흉물로 변하자 보다 못한 지역민들이 베어내고는 헛헛한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금의 느티나무를 심었으리라.

 

  고향이란 단어가 잠시 밝아지더니 이내 가물거리며 침전되어 간다. 다음 순간 큰 나무와 함께 고향마을의 사연들이 질곡의 세월을 견딜 수가 없었으리라는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의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턱도 없는 합리화를 강화시키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향이사 사라졌을지라도 오래 전 이 자리에 그렇고 그러한 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후세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큰 나무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것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보상해주는 일이 될 것이고, 고향에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뿌리를 알게 해주는 일이다. 지금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 옆에 사라지고 없는 큰 나무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 이것이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시대를 살다 간 사람으로서의 책무이다. 넘치는 객기에다 주체할 수 없는 만용까지 부려가며 큰나무의 표지명을 기록해 본다.

 

      『여기 동네사람 모두가 먹었던 공동우물 옆에

        마을이 생길 무렵에 심어진 소나무와 참나무 두 그루가

        오랜 풍상을 견디며 살았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 나무 수명이 다해 넘어졌으니

        이를 안타까이 여기는 동민들의 뜻을 모아

        새로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어 가꾸노라.

                                             - 아무아무 해에 -』

'나의 수필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주문학 25호의 수필작품평  (0) 2006.04.11
미나리  (0) 2006.03.21
봄날은 온다  (0) 2006.03.06
산국 꽃대궁 소식  (0) 2005.11.17
아들이 사려져 가고 있다  (0) 200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