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산국 꽃대궁 소식

죽장 2005. 11. 17. 09:27

  잠이 들었었나 보다. 살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달은 이미 기울었는지 별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행여 누군가의 눈에 띄어 곤란해질 일이 없는데도 조용조용히 뒷산으로 올라갔다. 토란줄기를 수확하고 난 밭머리에 무, 배추가 싱싱하다. 차나무들이 자라고 잇는 곳을 지나니 쌓인 낙엽에 발이 빠진다. 발부리에 밟혀 바스라지는 삭정이 소리에 청설모가 놀라 달아난다. 호젓한 산길을 더 오르려다 아침식사시간을 놓칠 수가 없어 돌아섰다.

 

  아내는 찬 서리를 맞으며 피어 있는 쑥부쟁이 꽃이 예쁘다며 꺾었다. 마침 나와 있는 안주인에게 건네니 오래도록 두고 볼 요량으로 수반에 꽂는다. 산나물이며 된장국에 김치반찬이 전부인데도 밥은 잘도 넘어간다. 식후 소화제 삼아 다시 몇 잔의 차를 마신 후 일어섰다.

 

  통유리 창 너머 나무로 만든 넓은 테라스가 보인다. 깨진 기왓장 위에도 들꽃이고, 갖은 형상을 한 질그릇에도 들꽃들을 심어 두었다. 안마당 연못 옆에 걸린 가마솥으로는 메주콩을 삶는다. 2층 다실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단아한 차탁에 머물고 있던 햇살이 놀라 일어선다. 창에 기대어 서서 바깥을 내려다본다. 억새로 덮여진 지붕 위에는 머리통만한 박 두개가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다. 개울가에 자리 잡은 원두막은 여름한철 시원한 물소리로 덮였으리라. 양지바른 담장 아래 심심한 진돗개 2마리가 졸고 있다.

 

  이제 곧 겨울이다. 돌 틈 곳곳에서 자란 국화차며, 뒷산에서 만든 오경차 맛은 더욱 그윽해질 것이다. 찬바람 불고 억새 지붕에 백설이 덮이는 날 다시 오고 싶다. 늦가을 만났던 저 산국 마른 꽃대궁이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골짜기에 찬바람 불어와도 토방 구들은 더 따스하리라. 옆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산국 향기가 스치고 있다. 산국 꽃대궁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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