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점잔과 난봉 사이에서 뽕따기

죽장 2006. 2. 3. 14:47

지은이 : 구활

출  처 : 영남수필문학회 홈페이지

 

송강 정철은 아름다운 문장가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그가 지은 시가들은 우리 문학사에 기리 남을 불후의 명작들이다. 그 중의 상당수는 임금을 사랑하는 임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아부를 통한 이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만해 한용운의 임은 빼앗긴 조국이었고 이상화와 이육사의 빼앗긴 들과 광야는 잃어버린 우리의 강토임에 비춰 볼 때 송강의 시가들은 보기에는 번듯하지만 영혼이 빠져버린 육체처럼 맛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송강은 무서운 정치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쓴 가사들도 임금의 신임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 진 것들이 많다. 그는 낙향해 있을 때도 귀는 항상 조정을 향해 열어두었으며 나라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이를 재기입신의 기회로 삼았다. 때문에 그의 후손들조차 송강의 인간성을 고운 눈길로 보지 않았다.
송강이 마흔아홉에 동인의 탄핵으로 대사헌직에서 물러나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송강정을 지어 4년 동안 머물렀다. 송강가사의 산실인 이 정자는 죽고 난 후 폐허로 변했지만 후손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선조의 한 생애는 후손들에 의해 점수로 매겨질 뿐 아니라 저지른 악행은 먼 후손들의 유전자 줄기세포로 깊이깊이 심어져 유전된다는 사실을 송강 자신은 몰랐을 것이다. 송강정은 사후 177년 만에 6대손 정재에 의해 중수되었다. 우리 정치꾼들도 틈만 나면 외국으로 나다닐 일이 아니라 송강정을 찾아 그의 정치역정을 되짚어보고 참고할 일이다.
사화의 피비린내 속에서 잔뼈가 굵은 송강은 출세와 파직을 거듭하다 쉰세 살 때인 선조 22년 10월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그는 우의정에 올랐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위관이 되어 전라도 유림과 동인 세력 1천여 명을 역모에 관련시켜 죽이는 기축옥사의 주인공이 된다.
송강은 어릴 적 당한 수모를 이 사건을 통해 풀어 버린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순천에 있는 형을 찾아가다 잠시 동암 이발의 집에 들른 적이 있다. 열 살이던 동암과 그의 동생 남계가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등 뒤에서 훈수하는 송강에게 “역적 놈의 자식이 왜 훈수를 하냐”며 달려들어 수염을 뽑아버렸다.
그 때의 기억이 한으로 남아 있던 송강은 정여립 사건에 동암 집안을 연루시켜 일가 참살이란 대 복수극을 저지르고 만다. 동암의 팔순 노모도 여덟 살짜리 아들도 죽임을 당했으며 동암 자신은 매를 못 이겨 죽었다. 작든 크든 ‘원한은 사지 말라’고 역사는 가르친다.
그러면 정여립은 누구인가. 전주 사람인 여립은 이율곡의 추천으로 홍문관 수찬이 되었으나 율곡 사후 그를 배반하고 집권 세력인 동인으로 변신하는 철새가 된다. 선조의 눈에 간사한 무리로 찍혀 벼슬을 잃어버리자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뢰한들을 모아 무술을 가르친다.
그 후 왜선 17척이 침범하자 훈련된 무사들을 출동시켜 이를 막고 조직을 전국으로 확대시키면서 대권의 꿈을 꾼다. 정여립의 꿈은 결국 탄로가 나 도망치다 관군에 포위되자 아들을 죽이고 자결한다. 철새 정치꾼은 예나 지금이나 말썽의 씨앗이기는 마찬가지.
정적들에게 칼바람을 일으킨 무자비한 송강에게도 한 가닥 풍류는 있었다. 그에게 진옥(眞玉)이란 기생첩이 있었다. 그가 진옥을 유혹할 때 지은 시조는 읽고 나면 부끄럼만 남는 그런 것이다. 이렇게 직설적인 음사(淫辭)를 시조로 풀어내다니, 과연 송강답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진옥의 답시 또한 멋지다. 백호 임제가 평양 기생 한우 집으로 뛰어들며 읊었다는 ‘한우가’와 ‘한우의 답시’ 보다는 은근미는 많이 떨어지지만 돈을 주고 몸을 사는 요즘 세태에 비하면 그래도 몇 수 앞이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송강은 이 시조를 통해 진옥의 몸은 얻었지만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졌으니 나라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며 임금의 노여움을 사 강계로 귀양을 가게 된다. 풍류가 ‘점잔’과 ‘난봉’ 사이에 머물면서 임 만나 뽕따기는 정말 어려운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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