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자고 간 그놈 못 잊겠네
여름은 더우니까 아무 일도 되는 게 없다. 아니다. 어떤 일도 안 되는 게 없다. 날씨가 더우면 우선 짜증이 난다. 짜증은 궁리를 불러온다. 궁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 이 짜증나는 무더위 속 불가해한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이론은 짜증과 궁리의 계절인 여름에 그 가설을 세우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여름을 즐기고 있다. “더위를 즐기고 있다”면 건방지달까 봐 “덥다 덥다”고 소릴 지르고 다니지만 참뜻은 여름 속으로 달려 들어가 우린 하나가 되어 관능을 탐하는 쾌락처럼 그걸 즐기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버티고 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산 숲을 다녀오는 일 외엔 가슴과 등에 땀 지렁이를 키우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여름에 시를 읽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이다. 어느 계절엔들 싫을 수가 없지만 특히 찌는 무더워 속에서 쪽박 샘물 맛 같은 시 한 수를 읽다보면 그 맛을 무엇에 비할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연애시를 읽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아니다. 여름에 보채고 있다. 시를 사랑하다 보니 무더위 까지 사랑하게 됐나 보다. 이 세상에 사랑 보다 더 귀한 물건은 다시없음으로.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겠다
와야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두더지 영식인지 꾹꾹이 뒤지듯이
사공의 성녕인지 상앗대 지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측히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 맹세 간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작자 미상)
이렇게 솔직할 수가 또 있을까. “기와장이 아들인지 두더지 새끼인지 능숙한 사공인지 진흙을 이겨대듯 들쑤시며 상앗대 내젓는 그 솜씨, 난 정말 못 잊겠네”로 요약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사설시조 한편은 포르노 영화 보다 훨씬 멋지다.
이 시조를 읽고 있으니 문득 고향집 옆집에 살았던 양자 엄마가 생각난다. 그녀는 일 잘하는 양자 아비와의 사이에 이쁜 딸을 둘이나 둔 여념집 아녀자였다. 그런데 일년에 한두 번쯤 우리 동네를 스쳐 지나가는 노름꾼과 눈이 맞았다.
그 노름꾼은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두메산골 과부 집을 일년에 한번쯤 들러 소금과 새우젓 그리고 과수댁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성욕까지 해결해 주는 보부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생긴 좌우지간 허우대 멀쩡한 그럴싸한 남정네였다.
양자 엄마와 노름꾼이 어떻게 만나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 양자 엄마는 노름꾼을 만난지 열 달 만에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 사실은 양자 아비는 눈치를 챘겠지만 뒷감당이 두려워 꿀 한 술 떠먹지도 못한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으로 마음속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은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동리 끝집 탱자나무집에 살고 있는 별명이 ‘탱자’인 처녀가 양자 엄마와 비슷한 시기에 아비 모르는 사내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동네에선 야단이 났다. 알고 보니 양자 엄마가 낳은 아이와 탱자가 낳은 아이는 밭만 다를 뿐 씨가 같은 한 형제였던 것이다.
탱자만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양자 엄마의 부정은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노름꾼의 발설로 비밀을 알고 있던 탱자는 미혼모로서 동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혼자 받는다는 게 너무 억울하여 “양자 엄마 귀도 당나귀 귀”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장소는 우리 집 동쪽 공동 우물가였다. 두 사람이 물 길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애기는 잘 커나” 양자 엄마의 안부가 화근이었다. “와요. 내가 형님이라 부를까요” 탱자의 뼈있는 대꾸였다. “거기 무슨 말이고” “나는 다 알고 있구마” 이런 대화가 오간 후 둘은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두 사마리아 여인의 소문은 금새 골목을 타고 번져 나갔다.
내 어린 시절의 어느 겨울, 우리 동네를 떠돌던 노름꾼이 아니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두 여자의 몸과 마음을 피할 수 없게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불질을 할줄 아는 포수였거나 아니면 대도(大盜)였으리라. 앞에 적어 둔 사설시조에 숨어 있는 ‘간밤에 자고 간 그놈’처럼 실력이라 해야 하나 아님 기술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대단한 솜씨를 가진 위인인 것 같다.
그런데 양자 엄마도 탱자도 그 노름꾼을 한번도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았다. 두 사마리아 여인의 속내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뤄 짐작하건데 그를 그리워하는 정이 깊었으리라. 시인 최승자의 <Y를 위하여>란 시가 두 여인의 마음을 대변할 것 같다.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 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 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여름은 더우니까 아무 일도 되는 게 없다. 아니다. 어떤 일도 안 되는 게 없다. 날씨가 더우면 우선 짜증이 난다. 짜증은 궁리를 불러온다. 궁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 이 짜증나는 무더위 속 불가해한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새로운 이론은 짜증과 궁리의 계절인 여름에 그 가설을 세우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여름을 즐기고 있다. “더위를 즐기고 있다”면 건방지달까 봐 “덥다 덥다”고 소릴 지르고 다니지만 참뜻은 여름 속으로 달려 들어가 우린 하나가 되어 관능을 탐하는 쾌락처럼 그걸 즐기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버티고 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산 숲을 다녀오는 일 외엔 가슴과 등에 땀 지렁이를 키우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여름에 시를 읽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이다. 어느 계절엔들 싫을 수가 없지만 특히 찌는 무더워 속에서 쪽박 샘물 맛 같은 시 한 수를 읽다보면 그 맛을 무엇에 비할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연애시를 읽으며 여름을 나고 있다. 아니다. 여름에 보채고 있다. 시를 사랑하다 보니 무더위 까지 사랑하게 됐나 보다. 이 세상에 사랑 보다 더 귀한 물건은 다시없음으로.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겠다
와야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두더지 영식인지 꾹꾹이 뒤지듯이
사공의 성녕인지 상앗대 지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측히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 맹세 간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작자 미상)
이렇게 솔직할 수가 또 있을까. “기와장이 아들인지 두더지 새끼인지 능숙한 사공인지 진흙을 이겨대듯 들쑤시며 상앗대 내젓는 그 솜씨, 난 정말 못 잊겠네”로 요약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사설시조 한편은 포르노 영화 보다 훨씬 멋지다.
이 시조를 읽고 있으니 문득 고향집 옆집에 살았던 양자 엄마가 생각난다. 그녀는 일 잘하는 양자 아비와의 사이에 이쁜 딸을 둘이나 둔 여념집 아녀자였다. 그런데 일년에 한두 번쯤 우리 동네를 스쳐 지나가는 노름꾼과 눈이 맞았다.
그 노름꾼은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두메산골 과부 집을 일년에 한번쯤 들러 소금과 새우젓 그리고 과수댁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성욕까지 해결해 주는 보부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생긴 좌우지간 허우대 멀쩡한 그럴싸한 남정네였다.
양자 엄마와 노름꾼이 어떻게 만나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 양자 엄마는 노름꾼을 만난지 열 달 만에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 사실은 양자 아비는 눈치를 챘겠지만 뒷감당이 두려워 꿀 한 술 떠먹지도 못한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으로 마음속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은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동리 끝집 탱자나무집에 살고 있는 별명이 ‘탱자’인 처녀가 양자 엄마와 비슷한 시기에 아비 모르는 사내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동네에선 야단이 났다. 알고 보니 양자 엄마가 낳은 아이와 탱자가 낳은 아이는 밭만 다를 뿐 씨가 같은 한 형제였던 것이다.
탱자만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양자 엄마의 부정은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노름꾼의 발설로 비밀을 알고 있던 탱자는 미혼모로서 동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혼자 받는다는 게 너무 억울하여 “양자 엄마 귀도 당나귀 귀”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장소는 우리 집 동쪽 공동 우물가였다. 두 사람이 물 길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애기는 잘 커나” 양자 엄마의 안부가 화근이었다. “와요. 내가 형님이라 부를까요” 탱자의 뼈있는 대꾸였다. “거기 무슨 말이고” “나는 다 알고 있구마” 이런 대화가 오간 후 둘은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두 사마리아 여인의 소문은 금새 골목을 타고 번져 나갔다.
내 어린 시절의 어느 겨울, 우리 동네를 떠돌던 노름꾼이 아니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두 여자의 몸과 마음을 피할 수 없게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불질을 할줄 아는 포수였거나 아니면 대도(大盜)였으리라. 앞에 적어 둔 사설시조에 숨어 있는 ‘간밤에 자고 간 그놈’처럼 실력이라 해야 하나 아님 기술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대단한 솜씨를 가진 위인인 것 같다.
그런데 양자 엄마도 탱자도 그 노름꾼을 한번도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았다. 두 사마리아 여인의 속내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뤄 짐작하건데 그를 그리워하는 정이 깊었으리라. 시인 최승자의 <Y를 위하여>란 시가 두 여인의 마음을 대변할 것 같다.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 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 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 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 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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