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봄, 작은 꽃들의 속삭임

죽장 2020. 4. 4. 18:4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내 유입된지 73일 째인 오늘로 신규확진자수는 두 자리 수로 줄었지만 국내 누적 확진자가 1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전 세계 확진자가 곧 100만 명에 이를 것이며, 사망자도 3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뉴스이다. 유래 없는 이 전염병이 종식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데, 90대 확진자 노모를 눈물로 배웅한 60대 백발 아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떠나지 않고 있다.

 

   입원해 있는 어머니가 확진자가 되어 인근의 전문병원으로 이송된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은 아침도 거른 채 630분부터 요양병원 앞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오후 3시 가까이 되어서야 병원 마당에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병원 문이 열리고 침대가 밀려나왔다. 접근금지띠가 쳐져있어 다가가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지만 의료진 틈사이로 보이는 환자의 어깨만 봐도 분명 어머니다.

   ‘엄마!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렸는지 내 쪽으로 힐긋 쳐다보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내 얼굴에 붙어 있는 마스크 때문에 알아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엄마는 구급차로 옮겨졌고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엄마, 막내 왔어.

        밥 많이 먹어야 해.

        기다릴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다녀와.“

   아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려는 순간 어느 병원으로 가느냐고 물으니 대구의료원이라는 말 한마디만 들려준다. 요양병원에 도착한지 8시간 만이었다. 구급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고 나서야 돌아섰다. 하루 종일 굶었던 아들은 도무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늘도 물병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지난 40여일을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하느라 집안에 갇혀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후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나선지 여러 날 째이다. 집 가까이 있는 산길을 걸으면서 어쩌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어도 서로 눈길을 주지 않고 외면한 채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겨울이 끝난 산에는 봄이 도착해 있었다. 사진으로만 접하던 들꽃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들은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었다. 한 구비 돌아가면 분홍으로, 다음 모퉁이에서는 노랑으로 맞아주었다. 이 작은 꽃들은 한꺼번에 피지 않았다. 처음에는 연분홍 노루귀가 피더니 다음은 파란 현호색이 반겨준다. 연이어 핀 남산제비꽃은 수수한 색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저께는 양지꽃이 무수히 노란 손을 흔들어주더니 오늘은 앙증맞은 개불알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눈길을 주니 웃어준다. 마음을 주고받는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무심한 척 지나쳐야하는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내일은 무슨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하다. 그것은 내가 날마다 산으로 가는 이유가 되었다.

 

   봄, 작은 꽃들은 우울한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기쁨을 전해준다. 가슴에서 잊혀져가던 고마움을 되살려준다. 훗날 언제쯤 봄꽃들이 죽어라 피어나던 20204월의 산을 기억하랴. 비탄과 통곡이 울려 퍼지고, 사람이 사람을 피해 다녔던 시절에 피었던 꽃의 속삭임이 큰 위안이었음이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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