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두모악 그 사람

죽장 2019. 7. 5. 15:49

 


  4년 전에 한 번, 올해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그 곳에 갔다. 우리는 반가운 얼굴로 마주보며 대화하였다. 침묵 속에서 눈빛만 주고받았지만 내용은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진지했다. 그는 여전히 풀과 나무와 바람으로 머물고 있었으며, 나 또한 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두모악의 전설 김용갑’. 그는 제주도의 한 산 중턱 작은 폐교에서 루게릭병과 싸우면서도 사진을 찍는 틈틈이 마당에 돌을 쌓았다. 쌓은 돌무더기에 바람이 찾아오고 바람 따라 풀씨도 날아들었다. 그러는 사이 차츰 근육에 힘이 빠져나갔고 마침내 47세 젊은 나이가 그의 생애 끝이었다. 사진 찍기와 돌 쌓기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는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에도 사진기를 들고 나섰다. 삶의 대부분을 들녘이나 바닷가에서 보냈다. 사진 장비를 둘러 메고 나선 아침 들판에서 몰려오는 허기를 참을 수 없어 주인 몰래 당근이나 고구마를 슬쩍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 그를 누가 탓하랴. 가난은 그의 숙명이었다.

   제주는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가 하면 태풍도 잦은 곳이다. 태풍에 상처 입은 풀과 나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부러진 줄기와 가지를 추슬러 새순을 키우는 자연과 함께 살았다. 끊임없는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불평 한 번 없이 새 삶을 준비하는 산과 들이 그의 스승이고 반려자였다. 불행과 슬픔은 그를 성숙시키는 원동력이었다.

   두모악 갤러리에는 그의 손 떼가 묻은 사진 장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어루만졌던 작품이 빈 교실 바람벽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늘의 햇살과 구름이며, 들판의 풀과 나무들이다. 억새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불고 있는가 하면, 큰바람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쓸쓸한 나목들도 서있다.

   두모악 그 사람의 작품 앞에 서니 한라산을 넘나드는 바람이 손을 내민다. 따스한 체온 같은 한 줌의 연민이 가슴을 파고든다. 고백컨대 생애 언제 한 번 절박한 상황에 목숨 걸고 매달려 본 적이 적이 있었던가. 훗날 어느 시점이 되면 세월이 나에게도 묻게 되리라. 내 살던 자리에 따뜻한 온기까지는 없을지라도 스쳐가는 바람 한 점 쯤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면 그것조차도 욕심일까?


'나의 수필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작은 꽃들의 속삭임  (0) 2020.04.04
그 분은 새벽에 왔다  (0) 2019.09.05
감귤꽃향기  (0) 2019.06.17
신기루를 보았나요?  (0) 2019.04.10
미완성의 아픔이여!  (0)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