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그 분은 새벽에 왔다

죽장 2019. 9. 5. 14:55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암 투병 끝에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켜봐서인지 제발 아프지 않고 죽어야 할 텐데라는 말이다. 그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많이 아팠는지, 아니면 평소의 소원처럼 아프지 않고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의 유년기에는 죽음과 아픔이란 단어가 함께 붙어 다니곤 했다. 청년이 되면서 외람되게도 여성들이 출산 때의 고통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경험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도 하지만 죽음과 아픔, 출산과 아픔은 비교할 수가 없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태국에 머문지 한 달을 며칠 앞두고 있는 어느 날 새벽이었다. 갑자기 허리가 끊어지는 듯 아팠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뛰고 구불며 몸부림을 쳐도 통증은 멎지 않았다. 그 때 순간적으로 누가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구나, 사람이 죽을 때는 이만큼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헤맨지 30여분이나 되었을까. 통증이 감쪽같이 멈췄다.

  그날의 아픔을 잊고 지낸지 한 열흘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통증은 전과 같이 새벽에 시작되었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그 분이 또 찾아온 것이다.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준비해간 진통제를 틀어넣었으나 고통은 멎지 않았다. 원인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대책 없이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더구나 기가 막히는 것은 그곳이 2시간의 시차에, 비행기로 5시간이나 날아야 돌아올 수 있는 외국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찌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급기야 조기 귀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항에서 응급실로 직행했다. 응급실 침대 위에서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면도칼을 뱃속 깊이 밀어 넣고 서서히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때로는 뾰족하고 긴 송곳을 찔러 넣고 좌우로, 위아래로 휘젓는 것 같았다. 이런 엄청난 고통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팔에 꽂은 진통제액이 효과를 나타내면서 요로결석이란 말이 귓전으로 들려왔다. 아이를 두 번이나 출산한 어느 여성이 그때보다 요로결석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더 아팠다고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엄청났던 통증이 점점 약해지면서 죽음을 앞세우고 나가왔던 그 분이 물러가고 있었다. 험하고 험한 고통의 산을 내 발로 걸어서 넘어온 것이다.

  강력한 충격파가 아픈 곳을 때리는 것으로 시술은 끝이 났다. 퇴원수속을 하는 나에게 다가온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남자 4명 중 1명은 걸린다. 여성이 출산할 때의 고통과 맞먹어서 남자가 느낄 수 있는 산고라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 일본군이 마루타 실험을 하며 고통의 순위를 매겼는데 산채로 불타는 고통이 으뜸이고, 마취 없이 살을 깊게 째서 수술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그 마취 없이 수술하는 고통과 동급인 게 바로 이 요로결석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어머니보다 더 많아졌다. 죽음으로 인도했던 그 분은 새벽에 2번이나 다가와서 나를 어머니 곁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죽어봐야 죽는 아픔을 알겠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는 예행연습은 확실하게 한 셈이다. 출산 시의 아픔을 얘기하는 여성에게 그 정도의 아픔이라면 나도 경험해 봤다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그 분은 언젠가는 또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 그 때는 크고 작은 아픔을 품고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강을 건너가야겠지. 어머니가 계시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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