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신기루를 보았나요?

죽장 2019. 4. 10. 22:52

 

  새벽에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다. 크루즈를 나서면서 도시락을 받아들고 버스에 올랐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 출발해야 했다. 수단 국경에서 불과 40km의 거리이니 길이 막히면 4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버스는 누비아(Nubia)사막을 가로질러 달렸다. 오른쪽 지평선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았고, 나일강물을 끌어다가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작업현장도 보면서 비몽사몽 도착한 곳이 아부심벨(Abu Simbel)이다.



  높이 32m, 폭 38m, 깊이 63m의 거대한 동굴 아부심벨은 고대 이집트 19왕조의 제3대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만든 신전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300년 전의 역사이다. 신전 입구에는 높이 20m에 달하는 자신의 상 4개를 만들어 세웠다. 그 옆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랑하는 왕비 네페르타리와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에게 바치는 소신전을 또 만들었다. 정면에 왕과 왕비, 여신을 표현한 높이 10m의 6개 거상이 나란히 서있다.
  모래에 묻혀있었는데 1813년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후 1960년대 아스완댐이 건설되면서 나세르호의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게 되자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힘을 합하여 65m 높은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돌아오는 길은 아침에 건너왔던 누비아 사막을 다시 건너가야 한다. 사막 한가운데 어디 쯤 이었으리라. 눈을 비비면서 보고 또 봐도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사막의 끝 눈길이 닿는 지점에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르지만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와, 신기루다!”하는 소리가 나왔다.
  1798년 나폴레옹 군사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이집트 원정에 나섰던 프랑스 군사들은 사막을 행군하면서 매우 지쳤으리라. 그때 그들에게 야자수가 보이고, 오아시스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가가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야자수나 호수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이 맞닥뜨린 기상현상은 바로 신기루였던 것이다. 사막을 탐험하거나 바다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신기루는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폴레옹군이 이집트 사막에서 물이 가득한 오아시스를 본 것과 같다. 신기루가 가지고 있는 신비한 이끌림이리라.



  어린 시절 햇빛이 강한 봄날 들판에 어른거렸던 아지랑이는 소년의 꿈이었다. 더운 날 가열된 아스팔트 도로를 달릴 때 길 위에 보고는 했던 물웅덩이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먼 들판의 어른거림이나 달리는 길 위에서 보았던 물웅덩이와 같은 아지랑이를 보며 소년은 꿈을 키웠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달렸었다.
  오늘 3,000년 전의 기록인 아부심벨을 본 후 누비아 사막을 건너는 도중에 내 눈 앞에 나타난 신기루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뒷모습일까? 생의 마지막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라는 간절한 메시지일까? 오아시스는 사막의 꽃이요 희망이고 낭만이라 했으니 오늘 본 저 신기루는 꽃이고, 희망이고, 낭만의 전조증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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