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미완성의 아픔이여!

죽장 2019. 4. 7. 11:24

미완성의 아픔이여!

 

 

   나일강을 가로막은 아스완댐을 뒤로하고 미완성 오벨리스크로 향했다. 시가지를 달리는 낡은 차들의 꽁무니로 먼지가 따라붙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위산을 넘어온 열기에 숨이 막힌다. 이집트의 붉은색 화강암 석물들은 대부분 이 채석장에서 나왔으며 나일강을 이용하여 곳곳으로 운반하였다. 아스완 북쪽 채석장에 위치해 있는 돌산 중간쯤에 만들다가 만 오벨리스크가 누워있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명령으로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에 세울 오벨리스크를 만드는 중이었다. 하트셉수트는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5번째 파라오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의미를 가진 하트셉수트의 치세가 역대 파라오 중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하트셉수트의 재위 기간도 약 20년으로 이집트의 여왕 중 가장 길다.

   오벨리스크의 제작자들은 기반암에서 바로 오벨리스크를 깎아 옮기려 했었다. 그러나 화강암 부분에 균열이 가는 바람에 계획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오벨리스크의 바닥 부분은 여전히 기반암과 이어져 있는 상태로 있다. 완성되었더라면 대략 42m 높이에 무게 1200여톤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 중 가장 큰 것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지 못한 이무기가 뜨겁게 달궈진 패석 무더기 옆에 누워있다. 태양에 닿을 기념탑으로 우뚝 서서 만인이 우러러 봐야했지만 일찍이 상처 난 허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뭇사람의 조롱을 받으며 수 천 년을 견디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대상이 한 낱 구경꺼리가 되어 있다. 완성과 미완성의 차이야말로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이다.

   미완성의 아픔을 되새기며 출구 쪽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니 남루한 차림의 소년이 다가와 볼펜을 달라며 손을 내민다. 3000년 전 화려한 문화를 온 세계에 자랑했던 민족의 후손이 아닌가.

[2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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