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예술이 살아 있는 마을 산타페

죽장 2019. 2. 18. 20:29


  ‘거룩한 신앙’이란 뜻을 가진 도시 산타페(Santa Fe)는 뉴멕시코의 주도이자 예술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긴 주도인 동시에, 해발 2,194m에 위치하여 미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주도이기도 하다.
  알라모고도를 출발하여 3시간을 달렸다. 길가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쌓여 있어 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달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낯선 산야를 구비 돌아가면서 산타페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생각한다.
  초기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 고문, 살육했으며 마을을 약탈하고 파괴하면서 기독교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들이 어린 소녀를 강간한 데 격분한 원주민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산타페 초대총독은 마을을 공격하여 800명 이상을 살육하고 25세 이상인 모든 남자들의 한 쪽 발을 절단했으며, 12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선교사들에게 하인으로 선물했다고 한다.
  당연히 선교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지역에는 교회나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온다. 1610년에 건축되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산미구엘 교회가 있는가 하면, 또 교회내부에 나선 형태로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가진 로레토 교회가 유명하다. 360도로 두 번 회전하며 성가대석으로 올라가는 이 계단은 못을 전혀 쓰지 않았고 계단을 지탱해주는 기둥도 없다. 교회건물을 처음 지었을 때 기본공사는 마쳤으나 뒤쪽의 성가대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지 못해 고민하던 어느 날 이름 모르는 목수가 나타나서 자원해서 계단을 만들어주고 댓가도 받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계단은 오늘날까지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그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산미구엘교회]                                      [로레트교회 내부의 나무계단]


  도시 전체가 황토색이다. 황토색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일제히 늘어서서 이곳이 산타페임을 말해주고 있다. 건물 외벽을 황토나 황토색의 시멘트로 바르고, 창살도 황토색 나무로 덧대었다. 시청사와 호텔, 상가, 심지어 교회까지도 같은 구조를 지녔다. 과거 인디언들의 가옥 스타일에 스페인풍이 혼합된 것이다. 이런 아도비(Adobe)스타일의 건축양식이 주는 매력과 고풍 짙은 거리들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정감어린 겉모습 뿐 아니라 도시의 속살은 예술로 가득 차있다. 20세기 초부터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이주해 왔기 때문에 산타페는 미술의 메카로 되어있다. 캐년 로드(Canyon Road) 좌우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갤러리들을 비롯하여 현재 300개가 넘는 화랑이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뉴멕시코의 자연과 문화에 예술적 영감을 얻어 이곳에 둥지를 틀었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예술가들의 활약으로 오늘 날 산타페는 예술의 마을이라는 화려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마을 전체가 작가와 작품이 전시되거나 활동 중인 공간이다. 돌을 쪼고 있는 조각가와, 이젤 앞에서 붓을 들고 있는 화가를 쉽게 볼 수 있다. 예술의 마음이라는 이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예술마을을 걸으면 모두가 예술가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마음에 와 닿는 것 모두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먼 산에는 백설이 쌓여 있고, 가까이 숲에 묻혀있는 마을에는 고운 단풍이 한창이다. 거닐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발걸음은 가볍다. 이것이 예술 마을 산타페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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