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사라진 민족의 흔적

죽장 2019. 1. 18. 11:26


  우르밤바의 아침은 상쾌했다. 간밤 늦게 들어올 때는 눈에 뜨지 않았던 전통양식의 숙소는 바위와 흙으로만 된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현지인 아줌마가 좌판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뒤로한 채 마추픽추행 버스는 출발했다. 우르밤바 강물도 씩씩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버스가 휴게소도 아닌 길가에 멈췄다. 내렸더니 그곳은 바로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캡슐호텔이 있는 곳이었다. 마침 투숙객 두 명이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는 짚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까마득한 바위산 정상부근에 호텔을 지을 발상을 한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것도 캡슐로 말이다.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역 입구 풍경]
 
  버스는 30여 분 만에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역에 도착했다. 아담한 역에는 예약된 관광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해발 2,430m 마추픽추까지는 이 열차로 다시 1시간40분 정도를 가야한다. 오래 기다려왔던 역사적인 장소로 향하는 길이어서 창밖 풍경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차안에서는 종업원들이 무료로 주는 커피와 과자가 있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도착하였다. 
  올망졸망 진열된 상품들이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자 작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들을 빼곡하게 태운 버스는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산꼭대기를 향해 질주했다. 안개가 자욱한 갈짓자 길을 꺾어 돌면서 15분가량을 올라갔다. 창밖에는 잉카인들의 서러운 눈물인 양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은 빗줄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드디어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풍경은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에 보석처럼 꼭 끼워진 잉카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물』이라 했다는 한 건축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여기가 잉카인들이 남긴 마지막 보물일까? 아니면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한 점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비극의 현장 그 자체일까? 


                                      [마추픽추 전경, 정면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와이너픽추이다]


  일찍이 찬란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던 잉카제국. 태양신을 숭배하는 제단에 황금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걱정없이 살아가던 잉카인들에게 어느 날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 닥쳤다.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200여 명의 군사가 잉카제국에 들이닥쳐 황제를 죽이고 제국을 멸망시켰던 것이다. 하얀 얼굴의 사람들이 나타나 자신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던 잉카인들은 그들이 바로 전설의 신들이라 믿고 호의적이었지만 그들은 무차별 공격했고 마침내 멸망시켰다.
  잉카가 멸망하자 마지막 황제 아마루가 엄청난 황금을 숨겨놓은 도시가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스페인 군사에게 사로잡힌 잉카인들은 죽어가면서도 그 황금도시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문은 탐험가를 비롯하여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했으나 무두 실패하였다. 그러다가 1911년 토착 인디언들의 안내를 받은 예일대학교의 하이런 빙험(Hiram Bingham, 1875∼1956)이 그곳을 발견하여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 아마존강 원류인 우르밤바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114km 올라간 지점인 해발 2,280m에 위치해 있는 이곳이 맞추픽추다.
  비에 젖고 있는 마추픽추를 내려다본다. 맞은편에 원뿔 모양의 봉우리 와이나픽추(Huayna Pichu)가 마주보고 있다. 그 좌측에 있는 작은 봉우리 3개는 콘도르가 날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잉카인들은 계단식으로 만든 밭에 옥수수와 감자, 코카잎을 재배했고 가축도 길렀다. 200여 개의 건물로 1,200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은 600m 아래에서 운반해온 돌로 지어졌다. 또 식수와 농사용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고랑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잉카인들은 왜 살기 좋은 평지가 아닌 이 높은 산꼭대기에 삶의 터전을 건설했을까? 찬란한 황금문화를 구가했던 그들은 어쩌다가 최후의 요새만 남겨놓고 지구상에서 사라졌을까? 오늘날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돌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던 흔적을 보면서 의문이 이어진다.     


                                                  [잉카인들이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밭]


  마추픽추 언덕 위에서 선한 눈동자를 끔벅이며 무심한 눈길을 주고 있던 라마가 생각난다. 조상들은 길렀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돌로 남겨진 흔적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현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페루 어딘가에는 황금도시를 찾는 탐험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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