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겸손하라는 명령을 듣다

죽장 2019. 1. 3. 22:08

  아르헨티나 이과수국립공원 입구에서 궤도차량을 탔다. 느린 속도로 원시림을 헤쳐 나가면 어디선가 은은한 진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의 진원지가 폭포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폭포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드디어 하늘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지는 굉음으로 다가온다. 저만치 뿌옇게 안개가 피어오르고 무지개가 떠있다. 마침내 더는 갈 수 없는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 세상의 모든 물이 몰려와 한 곳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하나로 목소리로 합해져서 귓전을 때린다. 세상의 모든 물이 떨어지는 곳, 그 끝없는 지점을 향해 날아갔던 내 시선은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지구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세상의 물이 모두 합쳐져 오직 하나의 구멍으로 쏱아지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전신이 물이 떨어지는 아래로 전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지축을 울리는 웅장한 음악에 압도되어 어떤 감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잡념이 끼어 들 사이가 없다. 



  브라질 쪽에서는 사뭇 다르다.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바로 절벽이래로 거대한 계곡 펼쳐지고 맞은편에는 크고 작은, 굵고 가는 물줄기가 숲에서 나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 갑자기 달려든다. 하늘에서 275폭의 무명베 자락이 펄럭이며 떨어지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음색을 자랑하며 태고 적부터 연습해왔던 곡을 익숙하게 연주하고 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달려드는 물보라에 금방 몸이 젖는다. 하늘에서는 축복과 환희의 물폭탄이 멈추지 않고 떨어지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를 삼킨지 오래다. 자연의 섭리 앞에 무력한 인간이 서있을 뿐이다. 아무 말 말고 침묵하라는 게시인가. 겸손하라는 명령인가.



  죽기 전 이과수폭포를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며 발길을 돌린다. 하늘을 메우고 땅 위에 넘치던 소리가 멀어진다. 아니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더 큰 울림이 되어 몸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