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그대, 『Freedom is not free』를 잊었는가

죽장 2017. 12. 25. 11:14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비록 수 천 년 된 역사적 유물은 없었지만 역시 세계의 수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백악관이며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워싱턴 기념탑,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등을 순회하면서 그 규모에 압도당하고 정갈한 시가지 풍경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 만난 어떤 기념조형물보다 의미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이었다. 전 인류로부터 존중받아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 앞에서 숙연한 기분이 되었다. 더구나 6·25 전쟁 직전 낙동강 인근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진정 잊을 수 없는 슬프고도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할 무렵 피난길에 나섰다.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어머니는 이불보따리를 머리에 이었으며, 형님은 쌀자루를 메었고, 누나는 젖먹이 동생을 업었다. 하늘에는 폭격기들이 새까맣게 떠서 날고, 산을 넘어 날아오는 대포알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아비규환의 현장에 맨몸으로 노출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느꼈던 공포의 무게는 얼마쯤 이었을까. 포성이 잦아들자 피난을 끝내고 돌아온 고단한 가족들을 맞아준 것은 흙벽은 물론이고 돌담까지 무너져 폐허로 변한 집이었다.

  너와 내가 따로 없이 우리 모두가 함께 맞닥뜨렸던 67년 전의 6·25전쟁. 누나의 등에 업혀 피난을 갔던 그날의 젖먹이는 이렇게 살아 있지만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이 5만4천246명이다. 미군 8천177명, 유엔군 47만267명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워싱턴DC의 이 공원은 피 흘려 지킨 역사를 기억하고자 1995년에 만들어졌다. 육군 15명, 해병대 2명, 해군 1명, 공군 1명 도합 19개의 실물크기 동상이 V자 형으로 늘어서서 등에 배낭을 메고, 겉에는 판초우의를 입었고, 총과 개인장비를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고 전진하고 있다. 부릅뜬 눈, 굳게 다문 입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고, 내딛는 발걸음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가 서려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 2천500여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화강암 벽의 끝에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와, ‘조국은 결코 알지도 못했고 만난 적도 없는 나라를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적혀 있다.

 

  그들이 일찍이 알지도 못했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 중 한 명인 나는 지금 그렇게 목숨 바쳐 지켜준 나라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젖먹이 소년이 몸으로 겪었던 피난살이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자유가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님은 잊지 말아야겠다. 어려웠던 과거, 아픈 역사는 영원히 새겨야 할 교훈이다.

  오늘 위대한 미국 건설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이 있는 워싱턴DC의 한쪽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피 흘려 지킨 자유의 가격을 계산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으로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2017.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