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다

죽장 2017. 11. 28. 18:34

[2017 미국여행 (3)]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다

 

  흘러간 옛 노래 '애리조나 카우보이'를 입속으로 흥얼거리면서 앞으로 내달린다. 평원에 솟아오른 황토빛 바위덩어리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장농처럼 평평한 것이 있는가 하면 하늘을 향해 뽀족하게 솟아오른 것도 있다. 하나가 있기도 하고, 몇 개가 무리지어 있기도 하다. 길옆에 세워둔 대형 입간판이 유다주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불편한 다리, 남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외톨이 소년 『프레스트 검프』. 그는 첫사랑 ‘제니’를 만나면서 사회의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제니의 생각이 자기와 다름을 확인하면서 검프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달리기를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해석하며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앞장서서 달려가고 있던 검프가 문득 달리기를 멈추었다. 따라 달리던 추종자들은 표정이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3년 2개월 14일 16시간을 달리던 그가 갑자기 발걸음 멈춘 곳에는 지금도 “너무 피곤해요.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라 했던 검프의 말이 머물고 있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바라보며 곧게 뻗은 길을 달려 모뉴먼트 밸리 입구에 이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톰 행크스가 달리다 멈추었던 지점이 있다. 검프가 멈췄던 지점에 내려서 검프의 흉내를 내어본다. 검프에게 있어 달리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 생각없이 그냥 달렸을까? 아니면 달리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행복을 발견했을까? 검프가 달렸던 그 길을 나도 달려보았다.

 

  모뉴먼트 밸리에 들어섰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립공원이 아니고 인디언 나바호(Navajo) 부족이 관리하는 공원이어서 입구에서부터 인디언들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들의 웃음 이면에 고난의 인디언 역사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1860년대 아메리카 합중국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 섬멸작전은 그들에게는 슬픈 역사의 시작이었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섬멸되고 남은 1만 명의 포로들은 뉴멕시코주의 포로수용소까지 560여㎞를 끌려갔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표였던 셔먼 장군은 이들과의 협상에서 동부의 비옥한 초지, 포로수용소 인근의 목초지, 그리고 모뉴먼트 밸리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나바호족은 선조의 얼이 살아 숨쉬는 모뉴먼트 밸리를 택했다. 그것이 지금의 모뉴먼트 밸리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평원 여기저기에 솟아있는 거대한 황색바위들. 5,000만 년 전, 이 지역은 단단한 사암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고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원의 표면은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약한 암석은 모두 깎여나가고 단단한 산과 탁상대지만 남았다. 나바호 인디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지평선까지 달리면 304미터 높이에 있는 황량한 붉은 절벽이 나타나고 91미터 높이에 폭은 겨우 2미터밖에 되지 않는 기둥을 포함하여 마치 기념비(모뉴먼트)들이 줄지어 스쳐간다. 모뉴먼트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모뉴먼트들 사이의 꼬불꼬불한 길로 먼지를 일으키며 차량들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오가고 있고,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장엄한 모뉴먼트들은 자연이 만들어준 걸작이다. 『역마차』를 비롯하여 『포레스트 검프』, 『황야의 결투』, 『수색자』, 『백 투 더 퓨쳐』 등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다. 그중에서도 죤 웨인이 주연했던 서부영화의 고전 역마차는 톤토에서 출발한 역마차가 무시무시한 인디언 지역을 통과해 로즈버그로 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정직한 보안관, 겁쟁이 마부, 알코올 중독자인 의사, 은행돈을 횡령하여 도망치는 은행원, 위스키 장사꾼, 아낙들의 눈총을 받고 쫓겨난 창녀, 점잔빼는 수상한 도박사, 기병대 장교인 남편을 찾아 나선 만삭의 여인, 아버지와 형을 죽인 살인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서 탈옥한 링고까지 9명의 인물이 탄 마차가 이 지역을 관통하게 된다. 이 한 편의 영화로 인하여 모뉴먼트 밸리는 세계적인 명소로 재탄생되었다.

  석양을 받아 한층 더 붉은 모뉴먼트들을 보면서 나도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가 되었다가 역마차의 죤 웨인도 되어본다. 달리기로 인생역전의 기회를 찾은 사람이 스쳐가고, 제한구역에서 수만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나바호 인디언의 고단한 삶도 스쳐간다. 눈을 뜨니 석양이 기울어진 모뉴먼트 밸리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영화는 끝이 났다.

 

[Taylor rock 에서 보는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공원 전경]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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