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건너다

죽장 2017. 11. 19. 16:35

 

 

 

[2017 미국여행기 (1)]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건너다

 

  요세미티에서 라스베가스까지 먼 길을 가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120번 도로 티오가 패스(Tioga Pass Road)는 글자 그대로 지옥코스라 불리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10월 중순부터 5월까지는 폐쇄되었다가 여름과 가을에만 열린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되는 길이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요세미티 계곡에서 멀어질수록 나무가 적어지더니 급기야는 민둥산의 연속이었다. 요세미티 밸리와 우뚝 솟은 하프돔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해발 2,500m의 옴스태드 포인트(Olmsted Point)에 정차해서 숨을 고른 후 다시 출발하였다. 만년설이 녹아 흘러드는 테나야 레이크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각, 모노호(Mono Lake)가 보이는 리바이닝(Lee Vining)에서 맛있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우고는 395번 국도를 따라 하룻밤을 머물 비숍(Bishop)을 향해 내달렸다.

  아담하고 깨끗하여 정감이 가는 작은 도시, 구수한 빵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있는 비숍의 아침은 상쾌하였다. 능선으로 솟아오르는 햇살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하여 190번 도로를 타고 라스베가스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도중에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다.

 

  그렇다. 184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가던 시절. 한겨울 솔트레이크시티를 출발한사람들이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넘기 힘들어 선택한 길이었다. 길이 700km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남쪽모퉁이를 돌아서 쉽게 가려고 향했던 길이 재앙의 시작이었으리라. 물 한 방울 발견하기 어려웠던 사막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면 Death Valley라는 악명이 붙었을까. 혹자는 금을 찾아 서부로 달리던 마차 행렬이 길을 잃고 들어선 삭막한 계곡, 더위와 물부족 등으로 모두 죽어가고 있던 상황에서 구출된 두 젊은 남자가 산을 넘어가며 혼잣말처럼 내뱉은 썰렁한 인사말 "Goodbye, Death Valley."라는 말이 전해져서 얻게 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네비게이션은 100km이상 직진하라고 한 후 입을 다물고 있다. 끝없이 뻗은 평원을 건너고, 사막식물이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산언덕에 오르니 눈 아래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아득한 바닥에서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모래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손끝에 잡힐 듯한 벌판 건너까지는 줄잡아 수십 km가 넘는다. 데스밸리가 나를 맞을 준비를 완료한 후 기다리고 있었다.

  차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차창에 모래알이 부딪치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요란하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눈앞을 가린다. 중간에 피할 생각이 없는 코요테 가족의 멍한 눈빛을 뒤로 하고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구비진 언덕을 돌고 돌아 오르는 자동차도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정상부근에서 뒤돌아보니 태양 아래 거대한 모래벌판이 누워있었다.

  브레이크를 점검해보고 달리라는 안내판을 뒤로 하고 내달려 마침내 롤러코스트를 타듯 출렁거리는 내리막길 끝 부분에 멈췄다. 매스키트 샌드 듄(Mesquite Sand Dune)이다. 낮고 작은 모래언덕들이 파도처럼 펼쳐져 있고, 뜨거운 모래바람은 쉬지 않고 불어온다. 사방을 둘러보니 엉겅퀴와 생명을 다한 듯한 나무들만 어지럽게 흩어져 흔들리고 있다. “1913년 7월 10일 섭씨 57도를 기록하였으며, 7~8월 평균기온이 섭씨 49도이고, 더울 때의 지면의 바위온도가 섭씨 93도까지 올라간다”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운 모래는 바람에 흩어졌다가 쌓이기를 반복한 끝에 크고 작은 물결이 되어 구비치고 있었다. 햇살의 반대편에 날카로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죽어 넘어져서 오가는 길손들의 의자가 되어있는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길을 재촉하였다. 계곡은 건너왔지만 여전히 사방이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이다. 데스 밸리 중간 어디 쯤을 달리고 있는 듯했다.

  얼마를 갔을까. 멀리 흰 눈으로 덮인 골짜기가 눈에 들어왔다. 금을 찾아 서부로 떠난 사람들이 심한 갈증으로 기진맥진해 있을 무렵 계곡 아래에 하얗게 빛나는 물이 눈에 들어왔다는 바로 그곳이다.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도착해보니 그것은 먹을 물이 있는 호수가 아니라 하얀 소금바다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아주 나쁜 물이었다. 황금을 찾아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죽었다는 이 곳, 베드워터 베이슨(Badwater Basin)은 해수면보다 무려 86m나 낮다. 데스밸리를 둘러싼 양쪽 산맥들이 융기하면서 이곳도 하늘에 노출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바닷물이 완전히 마르고 소금만 남았다. 뜨겁고 마른땅 데스밸리의 소금들은 서로 뭉치고 응결되었다고 역사는 말한다. 삐쭉삐쭉 돋아있는 소금결정들 위를 걸어보았다. 데스밸리는 양쪽의 두 산맥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구름들이 이 산맥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발 0m라는 표시를 바라보며 멀리까지 뻗어 있는 소금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왕복 1마일의 소금길을 나도 따라 걸었다. 물에 젖거나 흙이 섞인 곳은 진흙탕처럼 변한 부분도 있었다. 햇볕이 너무 따갑다. 더운 바람이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자를 날리고 옷깃을 풀어헤친다. 태양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Devil's Golf Course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흙과 범벅이 된 소금의 결정체들이 골프공처럼 작고 둥글게 뭉쳐져 넓은 벌판을 채우고 있기도 했지만, 데스밸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바쳐진 땅이라는 뜻으로 얻은 이름이리라.

데스밸리를 가로지르는 곧게 뻗은 모래사막을 건너고, 구비쳐 올라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면서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알았다. 데스밸리을 건너면서 황금을 향한 인간들의 욕심을 보았고, 광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았다. 베드워터는 갈증으로 목마른 사람에게는 분명 나쁜 물이었지만 인간이 어찌 소금 없이 살 수 있으랴. 데스밸리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요세미티를 떠나

     해발 3,000m 티오가 패스를 넘어 찾은 곳은

     2억년 전 바다였다.

     뜨거운 모래태풍을 헤치고 건너온 데스밸리

     그 데스밸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길이 64km, 폭 8km의 소금사막 베드워터

 

     그날,

     황금에 눈이 어두워 서쪽으로 내달렸던 사람들이

     숨을 거두었다는 애리조나 모래벌판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느꼈던 열기 때문인지

     아직도 내 몸은 뜨겁다.

 

[201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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