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국왕 서거 후일담

죽장 2016. 11. 25. 10:41

  겨울 성수기를 피해 10월에 간 태국. 푸미폰 태국 국왕의 서거 소식을 들은 것은 도착 4일만이다. 국왕의 초상이 새겨진 지폐는 접지도 않을 만큼 존경받고 있는 국왕이었으니 마치 쇳덩이로 짓누르는 듯 무거운 분위기가 깔려 있다. 신문도 방송도 모두 국왕 관련 내용 일색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옷차림도 애도 일색이다. 이방인인 우리 일행도 웃고 떠드는 것이 죄인 양 눈치가 보였다.

  즐거움을 애써 참으며 그렇게 여정을 완수하고는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타이항공 TG670편이 이륙하자면 시간이 꽤나 남았다. 여행지에서 다소 침울했던 기분을 떨쳐낼 필요가 있었던지 누군가 푸미폰 국왕은 서거했지만 오래 전 보았던 영화 「왕과 나(The King and I)」가 기억난다고 입을 연다.

 

   ‘태국의 국왕 라마 4세인 몽끗왕으로 분장한 대머리 율부린너와, 가정교사 안나로 분장한 데보라카의 개성 있는 연기가 압권이었던 영화였어.’

   ‘맨발의 국왕과 교사의 책임을 다하려고 고민하는 정숙한 안나였지.’

   ‘셀 위 댄스의 음악 속에 넓은 홀을 휘저으며 춤추던 장면이 멋졌어.

   ‘그보다 주고받는 강렬한 눈빛은 어쩌고.‘

   ’왕의 익살에 호응하는 안나의 순진함이 재미를 더했어.‘

   ’율 부린너는 아버지 라마 2세가 낳은 73명의 아이 중 43번째로 태어났다네.‘

   ‘그 자신도 56명의 아내에게서 39남 43녀 모두 82명의 자식을 두었지.’

   ‘47세에 즉위해 죽기까지 17년 동안에 82명, 정말이지 대단한 생산력이야.‘

   ’제품을 쏱아내는 공장도 아닌데 생산력이라니.‘

   ’율부린너의 눈매며 근육이 바로 생산력이었어.‘

 

  근엄했던 분위기에서 해방이 되니 웃음 속에 국왕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번 서거한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은 영화의 주인공 몽끗왕의 증손자다. 1946년 왕위에 올라 70년간이나 국왕의 자리에 있었으니 현존 전 세계의 국왕 중 최장기간 재위한 군주였다. 대단한 생산력을 자랑했던 증조부, 고조부와는 달리 단 한 명의 왕비에 1남 3녀가 전부이다. 그 분을 향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생전에 이룬 대단한 치적에서 나오겠지. 아니, 치적보다 생산력을 자랑했던 집안내력을 따르지 않아서야. 턱없이 부진한 생산력이 존경의 이유라니?

 

  이번 여행은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 일대였다. 치앙마이는 13세기인 1259년 멩라이왕이 세운 란나(Lanna)왕국의 수도로 ‘북방의 장미’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치앙마이 구도심은 직사각형 성체로 둘러싸여 있고, 성채 밖에다 수로를 만들어 해자를 팠다. 무너진 성벽이며 해자는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곽주변은 오로지 일방통행이다. 자동차의 운전석이 우리와는 달리 오른쪽에 위치해 있어 불변하기도 하거니와 일방통행으로 규정된 도로를 달리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치앙마이 곳곳을 누비고 다니노라니 시가지 요소에 내걸려 있는 국왕의 사진에 눈길이 많이 갔다. 아침마다 거리를 누비는 승려들의 탁발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음식을 정성껏 바치는 풍경은 존경과 믿음이 바탕이 된 진지한 의식이었다.

  국왕의 서거로 시작된 공항에서 ‘왕과 나’를 거쳐 스님들의 탁발까지 진행된 짧은 시간에 공항에서의 후일담은 끝이 났다. 국왕 서거기간에 찾았던 태국, 그 애도 분위기를 옆에서 직접 겪었던 이번 일정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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