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힘 빼고 세상 살기

죽장 2016. 9. 24. 15:36

힘 빼고 세상 살기

 

  ‘전인지’가 어제 텔레비전에 나왔다. 남녀 프로 메이저대회 역대 최소타 신기록을 세우고 금의환향한 ‘메이저 퀸’이다. “까다로운 코스가 좋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즐겁다. 메이저대회가 주는 압박감이 오히려 즐겁다”면서 투지를 불태우는 22살 전인지 선수의 얘기를 정신놓고 들었다. 지난 18일 프랑스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21언더파를 기록하였으니, 골퍼들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의 자존심이 된 그녀가 아닌가.

  근래 들어 운동신경이 느슨해지는가 하면 신체에 활기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초조해지는 일이 잦다. 평생 다녔던 직장에서 물러나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 유지 차원에서 육체활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오전에 수영장에 나갔다가 오후에 골프연습장에 나가고는 한다. 가끔 집사람과 탁구장에도 간다. 다행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수영장, 탁구장이며, 헬스장에 골프연습장까지 있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마음과는 달리 잘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힘을 빼는 일이다. 오늘도 힘을 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수영장에서 빨리 가려고 힘차게 팔을 젖거나 가라앉지 않으려고 다리를 버둥거릴수록 몸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오후에 나간 골프연습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계란을 쥐듯이 살며시 클럽을 잡아야 하는데 펀치를 날리는 권투선수처럼 힘껏 쥐고 휘두르니 될 턱이 없다. 탁구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손목에 힘을 빼야 함은 물론이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다. 입으로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 힘 빼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과한 욕심 때문이다. 상대보다 잘해야 한다거나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문제이다.

육체적인 운동은 물론이지만, 그 외에도 힘을 빼야할 일이 많다.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도 얼굴에 힘을 빼야 표정이 온화해지고 눈에 힘을 빼야 상대방이 다가온다. 내 어깨에 힘을 빼면 내가 행복해지고,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내 주변에서 멀어져간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말은 건방지고, 무례하고, 잘난 척 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소화기 내과 전문의가 변비환자에게 어깨에 힘을 빼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환자들은 변비는 치료하지 않고, 어깨 힘 빼기만 가르치는 것이 불만일 수도 있으리라. 살다보면 힘을 넣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빼야하는 일들 또한 그에 못잖게 많다. 나는 지금 힘 빼고 세상 살기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전인지의 스윙동작은 부드럽다.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한마디로 자연스럽다. 그녀가 친 공은 정확하면서도 멀리 날아간다. 강력한 동작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탁’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푸른 잔디를 떠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은 바라보면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전인지가 부럽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처럼 젊지도 않고 골프에 성적을 내고자하는 욕심도 없다. 다만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물 흐르듯 순리대로 백수생활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프로골퍼 전인지 선수의 수첩에 적혀 있다는 ‘신나게, 즐겁게, 몰입하기’라는 구호가 가슴에 와 닿는다.

[201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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