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요세미티(Yosemite)에서 별을 보다

죽장 2017. 11. 22. 08:52

 

[2017 미국여행기 (2)]

요세미티(Yosemite)에서 별을 보다

 

  이번 여행 계획에 요세미티가 들어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미국의 국립공원이지만 세계의 공원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폭포며, 암벽이며, 숲에 대한 기대로 여행의 설렘은 배가되기에 충분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지 한나절 걸려 처음 도착한 곳은 요세미티 계곡이 한 눈에 보이는 최고의 전망포인트 ‘터널뷰(Tunnel View)’였다. 하늘을 찌르는 숲 너머로 웅장한 바위 병풍이 펼쳐져 있고, 바위 절벽을 타고 폭포수가 쏱아지고 있는 절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약 백만 년 전,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300여 개의 호수와 폭포, 계곡으로 이루어진 요세미티는 189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요세미티(Ysemite)라는 단어는 미워크(Miwok) 부족 언어로 '살인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고, "붉은 곰을 잡아라!" 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다른 얘기로는, 요세미티 지역에 거주하던 아와니다 인디언을 소탕하기 위해 1851년 요세미티 지역을 관할하는 마리포사 시에서 출동한 사베지 소령이 이끄는 마리포사 기병대가 인디언들을 무차별 살상하거나 포로로 잡아서 보호구역으로 데리고 가던 중, 젊은 군인 한명이 아름다운 계곡을 가리키며 인디언에게 물었다.

  “이 아름다운 골짜기 이름이 뭐냐?”

  “요세미티!”

  요세미티는 아와니다 인디언 말로 '곰'이란 뜻이다. 말이 통할 리 없던 인디언은 백인의 질문을 ‘저기에 무었이 있느냐’가 아니면 ‘저 숲 속에 사냥감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고 대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원주민들이 뛰어가면서 "Yosemite! Yosemite!"라고 외치는 말을 듣고 "아! 여기가 요세미티라는 곳이구나!"라 생각하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이 가장 그럴 듯하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첫날밤을 보낼 통나무집을 찾았다. 사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이방인과 눈을 맞춘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짐을 풀고 바깥으로 나오니 숲으로부터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풀 위에 드러누웠다. 검은 보자기 같은 하늘이 내려와 이불로 덮인다. 하나 둘 별이 뜬다. 요세미티 하늘에 뜬 별은 유달리 크기도 하지만 색깔이 맑다. 아까 본 사슴의 눈 같은 별들이 돋아 있었다.

  수많은 사슴의 눈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한여름 밤 모깃불 피워놓은 마당의 짚멍석에 누워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스친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하나, 둘, 셋을 세면 행운이 온다고 했던 말씀을 상기하고 있는데 별똥별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요세미티에서의 둘째 날은 자전거 투어로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하프 돔(Harf Dome) 아래까지 갔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 해발 2308m의 바닥부터 914m나 솟아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대장 '엘 캐피탄(El Capitan)' 바위 아래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요세미티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박물관에서는 오래 전에 살았던 인간의 조상들의 모습과 마주했다. 바위를 물들이며 넘어가고 있는 석양에 취한 채 요세미티에서의 둘째 날을 마감했다.

  기다리고 있는 ‘백색 탠트’로 향했다. 탠트 입구에는 철제 박스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드디어 요세미티의 곰과 만나는 날이다. 탠트 안에 음식물을 두면 곰이 냄새를 맡고 쳐들어오니 반드시 사람만이 열 수 있게 설계된 철제박스에 보관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세면장과 화장실은 탠트와 조금 떨어진 공동구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밤중에 용무가 생겨 탠트 밖으로 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곰과 조우하게 될 터였다. 이제나저제나 곰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나를 향해 요세미티의 하늘에서는 별들이 떨어지고 있다.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람쥐에서부터 사슴과 곰까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시간들이 꿈처럼 흘러갔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중심부에 있는 깊이 1,000m, 폭 1,600m, 길이 1,100m에 이르는 계곡인 요세미티 밸리, 해발 6,0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에서 빙하시대를 뚫고 살아남은 세코이아 거목들, 세계 최대의 화강암 바위인 엘 캐피탄, 미국 최대의 낙차를 자랑하는 요세미티 폭포를 누비며 위대한 자연에 경의를 표했던 시간이었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와 거대한 바위 아래 자리 잡은 초원에 티끌 같은 점으로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똥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순간이 오래 오래 잊히지 않을 듯하다.

 

     그곳에 숲이 있고

     바위가 있고

     폭포가 있다.

     다람쥐가 살고

     사슴이 살고

     곰이 살고 있다.

   

     하늘에 별이 있다.

     그 아래 별똥별이 흐른다.

     또 그 아래 어머니 말씀이 흐른다.

 

     백만 년 동안 쌓인

     요세미티의 전설이다.

 

[201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