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유학산 사연

죽장 2014. 3. 11. 12:52

유학산 사연

 

  다부동을 지나 유학산 839고지에 올랐다. 아홉 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던 산이다. 달려드는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던 능선에는 지금도 피비린내가 난다. 잊혔던 그날의 포성이 들려온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자원입대한 학도병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몸을 던졌다. 죽기 전 어머니를 꼭 한번 보고 싶었지만, 원수의 총탄은 비켜가지를 않았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릴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한 줌 흙이 되고 말았다.

 

  전쟁의 현장을 찾아 나섰던 그날은 더웠다. 6.25전쟁 최후의 교두보였던 곳에서 조국을 지켰던 흔적을 확인했다. 구멍 뚫린 녹슨 철모와, 철모의 주인이 남긴 유해를 보았다. 그날 함께 묻힌 전우의 수가 얼마였던가? 지금도 나무막대로 헤적이면 60년간 묻혀있던 뼛조각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유학산이다.

  흘러간 역사가 된 전쟁. 펜 대신 총을 들었던 학도병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갔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던 어머니도 낙동강이 보이는 언덕에 묻힌지 오래다. 어머니 무명치마 자락처럼 펄럭이며 낙동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오늘 유학산에 올라 흙으로 변해있는 학도병을 만났다. 햇살 바른 언덕에 누워있는 학도병의 어머니를 만났다. 학도병의 죽음을 딛고 조국은 일어섰는데, 한번 가신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머니가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강물이 슬픔을 감추고 흘러가고 있다.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을 따라 처절했던 전쟁은 잊혀지고 있지만, 지금도 유학산에는 한을 품고 가신 어머니가 살아 있다. 조국을 지켰던 학도병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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