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마음 나누기

죽장 2014. 1. 22. 10:19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몇 개월만 있으면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퇴직을 앞두고 있다. 삶의 전환점에서 싫건 좋건 간에 정리해야 한다. 말이 정리이지 사실은 버릴 것을 골라내는 일이다.

  고향 인근의 주택에서 도회지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많이 버리고 왔지만 그 사이 살림살이가 알게 모르게 또 엄청 늘어났다. 버릴 것이 한결 많아진 셈이다. 한 바퀴 둘러보니 몇 년 째 사용하지 않고도 아무 불편이 없던 물건들이 많다. 하나씩 떼어놓고 바라보면 손때가 묻어 애착이 가는 것도 있고, 내 손에 들어올 때의 애틋한 사연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그것들이 언젠가는 긴요하게 쓰일 것일지라도 과감하게 버릴 작정을 하였다.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무작정 버릴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버릴 것과 나 아닌 누군가에게 소용이 예상되는 것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지만 누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소 염려되는 것은 너나없이 풍족하게 살아가는 시대이고 보니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진정성이 전달되면 그런 문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전통차에 취미를 가진 아내는 그동안 한 점 한 점 모아온 차도구들을 비롯하여 아끼던 그릇들을 엄선하였다. 나도 뒤질세라 나름대로 실용가치가 있는 물품들을 골라내었다. 그러고는 주변 친구들을 불러 걱정과 변명을 앞세워 풀어놓고 필요한 것들을 선택하게 하였다.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물품들을 이렇게 한 차례 치우고 나니 다음의 정리는 훨씬 수월했다. 공부를 잘 했다고 받은 우등상장이며, 결석한번 하지 않았다고 받은 개근상장도 꺼내었다. 직장재임 중 받았던 임명장이며, 위촉장도 마찬가지다. 이사와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보물처럼 들고 다녔던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려도 좋은 것은 없지만 훗날 내 아닌 누가 이를 반기며 간직할 것인가. 지금 이 기회에 내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될 책들을 골라 아파트 주민휴게공간에 기증하는 것으로 이사를 앞둔 정리를 마쳤다. 한 때 나의 분신 같았던 책들이지만 여기 남아 내 이웃 누군가에게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행복을 준다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니랴.

 

  인생 백세시대라 한다.

  40년 직장생활을 마감하는 지금이야말로 끝이 아니라 또 다시 시작하는 시점이다. 다시 맞을 40년 인생 후반부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 여태까지는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나누며 살아야겠다. 남보다 많이 가진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더 큰 보람임을 알았다.

  퇴직을 앞두고 결행하는 이삿짐 정리가 즐겁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기회를 잡은 것이 다행이다. 따지면 기껏 나누었다는 것이 한낱 물질일 뿐이다. 물질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그야말로 마음먹기 달렸으니 마음을 많이 나누고 싶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오늘 내디딘 첫걸음은 비록 조용하지만 묵묵히 실천하노라면 깊이도 생기리라 믿는다.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멋진 후반전 인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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