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고지’를 정복하라.
이것은 2014 갑오년 벽두 선주문학회에 떨어진 작전명령이었다. 최종 목표지점은 금오산 현월봉이다. 전문산악인 ‘H수필가’의 대장 옹립을 시작으로 원정대가 꾸려졌다. 대장은 즉각 원정대원 조직에 착수하였다. 모든 작전지시는 다음카페 ‘seonju1984’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행해졌다.
게시판에 대원 모집 공고가 떴다.
철저하게 본인의 희망을 중심으로 하되 험로정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했다. 신청자를 수합하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쟁률이었다. 결과는 우선 선정된 대원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후보대원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D-3일에 최종 엔트리 7명으로 원정대원이 확정되었다. 대장은 각자에게 방한 복장은 물론이고 전투식량을 비롯하여 필요한 특수 장비들을 빠짐없이 챙겨오게 하였다. 작전은 D-day에 지정장소 집합을 시작으로 개시된다는 최종 명령이 하달되었다.
드디어 작전개시일이 밝았다.
대장은 출발에 앞서 엄격하게 복장상태와 휴대품 점검을 하였다. 이어 전투식량으로 스티로폼제품 사발 하나씩을 지급하면서 더운물 휴대 여부를 점검하였다. 사발폭탄 발사에 꼭 필요한 것이다. 대원 한 명은 특수임무에 필요한 푸른 색깔의 병을 지급받았다. 대장은 대원들의 속옷까지 검사했다. 내복이나 메리야스를 입은 대원들이 예외없이 걸렸다. 당장 벗으라는 혹독한 지적에도 불쾌한 감정을 노출하는 사람이 없었다. 막중한 임무에 따른 중압감이 때문이었다.
출발의 신호가 울렸다.
대원들은 이미 체조로 몸을 다 푼 다음이었다. 기념사진 촬영도 마쳤다. 대원들의 얼굴에 임무를 완수한 후 전원이 무사히 귀환해야 한다는 의지가 나타났다. 옮기는 발걸음에 비장감마져 감돌았다. 대오를 갖춘 대원들은 1차집결지 할딱고개를 목표로 이동하였다. 10여분정도의 행군에도 체력이 부족하여 휴식을 간청하는 대원이 발생하는가하면 땀이 난다며 전투복을 벗기도 하였다.
작전계획을 일부 수정하였다.
할딱고개를 목전에 둔 대혜폭포 앞에서 휴식에 들어갔다. 1차 전투식량으로 커피와 사과 한쪽이 지급되었다. 잠시 후 대원들은 할딱고개를 무휴식으로 통과 후 베이스캠프인 너럭바위를 공격하였다. 동절기 고지점령 경험이 일천한 대원들인지라 헤프닝도 있었다. ‘촌P대원’은 복장 때문인지 연신 땀을 흘리다가 급기야 겉옷까지 벗는 바람에 군기문란의 지적을 받았다. ‘P대원’의 속옷에 착용한 ‘핫팩 스토리’는 가파른 고지로 향하는 대원들의 호흡을 더욱 곤란하게 했다. ‘J대원’이 선정한 최신 산악행진곡 ‘내 나이가 어때서’가 큰 위안이 되었다. 또 신발이며 복장이 고지점령보다 평지산책에 더 어울릴 듯한 ‘산P대원’은 특전사 출신답게 여유를 보였다.
너럭바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대장은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명령했다. 대원들은 전륜구동, 후륜구동 등 다양한 모델의 아이젠을 꺼내어 착용하였다. 삶은 계란이 2차 비상식량으로 나왔다. 함께 넣은 소금이 입안에서 녹기도 전에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원정대는 마침내 현월봉을 정복했다. 임무완수의 순간이었다. 대장은 비밀리에 준비해온 태극기를 꺼냈다. 대원들은 태극기를 펴들고 임무완수의 인증샷을 했다. 마음속으로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 120년 전 갑오경장의 선두에 섰던 선비들의 마음도 이랬으리라.
7인의 독수리들은 고지를 정복했다.
대장은 임무를 완수한 대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비장의 전투식량을 꺼냈다. 각종 야채에 오징어까지 넣어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다음 통깨로 마감한 영양식이었다. 때맞춰 ‘L대원’도 배낭을 열어 작전용으로 지급받았던 파란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그것은 19도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기록된 몽환제였다. 대원들은 몽환제가 든 종이컵을 높이 들고 “2014년 선주문학회 976고지 정복 완료”를 외쳤다. 대원들의 박수소리가 현월봉으로 울려퍼졌다. 고개를 뒤로 젖혀 한 모금 넘기니 976고지도 별 것 아니었다. 세월도 눈 아래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