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텃밭에서 김치가 태어나다

죽장 2013. 11. 26. 11:26

  김장을 하겠다고 한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학교에서 무슨 김장이냐며 의아해 했다.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가 있지 않느냐는 말에 금방 수긍이 갔다. 그 배추로 교직원들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김장이 추진되었다.

  우리 교직원들은 지난 가을 고구마캐기 영농체험을 하였다. 호미로 땅을 파헤치며 줄기를 당기자 주먹보다 큰 고구마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희열을 맛보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 아닌 이웃에게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보자며 조직된 봉사동아리에 전 교직원이 회원이 된 것이다.

 

  위클래스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교내 작은 공터에 텃밭을 일구었다. 아이들은 2학기가 시작되자 어린 배추 모종을 사서 심은 후 가을 내내 물주고 벌레를 잡으며 정성을 쏟아왔다. 가끔 배추밭을 기웃거릴 때마다 너풀거리는 이파리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배추밭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너희의 마음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을로 접어들자 배추가 단단하게 여물어졌다. 아이들도 탱글탱글하게 속이 차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더 열심이었다.

  계절이 겨울로 기울자 모두가 팔을 걷고 나섰다. 오늘 그 배추가 김치로 변신을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역할에 따라 3개 팀으로 나누어졌다.

  맨 먼저 배추를 뽑아와 다듬어 소금에 절이는 팀이 움직였다. 학생들이 배추를 뽑아서 가사실습실로 옮겨오자 선생님들이 받아서 배추의 배를 갈랐다. 노란 이파리들이 빼곡하게 맨살을 드러냈다. 소금물에서 건져낸 다음 굵은 소금을 켜켜이 뿌려두는 것으로 첫날 작업은 끝났다.

  다음은 김치 속으로 넣을 양념을 만드는 팀이다. 곱게 빻은 고춧가루에, 마늘, 생강 뿐아니라 파, 양파, 미나리, 갓까지 동원되었다. 어느 여선생님은 시어머니에게 배웠다며 찹쌀풀을 준비해왔다. 팔을 걷어부치고 함께 섞어 버무렸다.

  마지막은 준비된 양념에 버무려서 김치를 완성하는 팀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빨간 장갑을 끼는 모습이 비장감마져 감돌았다. 알맞게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묻혀나갔다. 배추는 금방 붉은 몸으로 변신하여 차곡차곡 눕혀졌다.

  한 선생님은 양념을 묻히는 과정에서 찢겨져 나오는 이파리를 옆에 있던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선생님은 얼굴에 고춧가루가 묻은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고춧가루가 묻었다. 창문으로 늦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포장박스에 담는 것으로 마감이 되었다. 상자에 포장된 김치를 택배로 보내기 위해 받을 사람의 주소를 적었다. 아이 하나는 지난 번 난타반이 요양원 공연을 갔을 때 알아 둔 할머니의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학생의 집 주소를 적었다.

 

  김치박스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둘러앉았다.

  김치 만드는 과정을 처음 보았다는 3학년 범수는 나중에 결혼하면 마누라를 자신있게 도와 줄 수 있겠다며 느스레를 떤다. 2학년 해성이는 우리 손으로 직접 키운 배추이어서 더 좋다고 하면서 내년 농사를 걱정한다. 선생님은 우리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김치를 받아든 할머니의 행복한 웃음이 연상된다며 흐뭇해한다. 김치 담그는 보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된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웃음이 교실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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