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원고와 자료

'상한 표현'을 버리자

죽장 2013. 12. 3. 12:38

[2013.12.3, 김명환기자의 글쓰기 교실]

'상한 표현'을 버리자

  지금 조선일보사엔 전국 각지의 시인·작가 지망생들이 보낸 2014년 신춘문예 응모작 원고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12월 6일이 마감입니다. 신춘문예의 계절을 맞으니 제가 문학담당 기자 시절 신춘문예 원고를 받아 심사를 진행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원고들이 산더미 같이 쌓이면 이를 심사위원들께 보내드리는 게 담당 기자의 일인데, 가장 힘든 장르가 시(詩)부문이었습니다. 응모작이 8천~9천 편, 많을 땐 1만 편 가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심 위원들이 1차로 100편 정도를 추려내 본심 심사위원들께 넘겼습니다.

  수천 편중 100편을 뽑아야 하는 예심 작업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어떤 응모작들은 심사위원 손에 들어간 뒤 1분도 채 안 돼 ‘탈락 원고’통으로 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대부분 너무나 판에 박힌 표현들로 채워진 응모작들이었습니다. 가령 응모작 중에는 ‘그대 떠난 빈 자리엔 / 외로움만 남았네…’ 라고 시작하는 시도 있었습니다. 유행가 가사에 흔한 표현 아닙니까. 자신만의 목소리가 없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언어들을 늘어놓은 원고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기본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바로 탈락됩니다.(물론 일부러 익숙한 표현을 끌어들이는 수사법이야 당연히 그것대로 평가됐죠.)

2012년 12월 11일 열린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소설 부문 예심 장면. 틀에 박히지 않은, 자신만의 표현과 자신만의 상상력이 있는 글이라야 이런 관문을 잘 통과할 수 있다.
2012년 12월 11일 열린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소설 부문 예심 장면. 틀에 박히지 않은, 자신만의 표현과 자신만의 상상력이 있는 글이라야 이런 관문을 잘 통과할 수 있다.
  판에 박힌 언어를 쓰지 말자는 건 신춘문예 응모작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모든 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용했기 때문에 신선하지 않은 말들을 글에 쓴다면 읽는 이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전해 주기 어렵습니다. 특히 누구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글을 쓸 때는 참신하고도 적절한 표현을 쓴 글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조차도 무심코 진부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봅시다.

<그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우람한 어깨 근육과 선명한 식스팩을 자랑하는 어네스틴 셰퍼드씨는 놀랍게도 올해 74세인 할머니다. 그는 최고령 여성 보디빌더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다. >

  첫 문장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 말은 꽤 많이 쓰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글의 첫 인상부터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은 그다지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첫 문장을 ‘나는 그녀가 60대 중반 쯤 된 줄 알았다’정도로 시작했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입니다.

  판에 박혀 새롭지 못한 표현을 흔히 ‘진부(陳腐)하다’고 하죠. 썩었다는 뜻입니다. 언어도 마치 생물과 같아서 시간이 흐르고 손을 많이 타게 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부패합니다. 판에 박힌 언어 표현도 처음엔 참신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영어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이걸 제일 처음 썼을 때는 꽤 참신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월 흘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상하고 때가 타서 이제는 좋은 느낌을 주기 어렵습니다.

  가령 ‘사랑’이라는 말을 봅시다. 인간의 여러 감정 중 얼마나 귀한 감정을 담은 말입니까. 그런데 이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도 없습니다. 노래 가사, 영화 대사, 방송 언어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립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때론 ‘사랑’이라는 말을 써야 할 자리에 ‘뭐 좀 다른 말 없을까’하고 궁리해 보기도 합니다. 물론 대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국내 공연되었던 어느 연극은 ‘러브’라는 진부한 단어에 대한 대한으로 ‘루브(luv)’를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언어를 개인이 임의로 지어내 쓸 수는 없으나, ‘우리가 지금 나누는 이 아름답고 예쁜 감정을 러브라는 진부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연극의 태도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신춘문예 응모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남에게 심사당하고 평가당할 글을 종종 작성합니다. 그럴 때도 진부한 표현을 피해 가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입시나 취직 전형 과정에서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도 틀에 박힌 표현을 남발했다가는 감점당하기 쉽습니다, 각 기업체의 인사 담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비호감(非好感) 자기소개서 구절’을 조사했더니 진정성 없는 획일적인 표현들이 꼽혔다고 합니다. 즉 가장 점수를 잃는 표현 1위는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아래에서 비록 넉넉하지 않지만 단란하게 자랐다’라는 진부한 구절이었다고 합니다. 2위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3위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였습니다. 이런 소개서를 쓸 때 참고할 만한 일입니다.

  어디 글쓰기 뿐입니까.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같은 연설문 속의 상투적 표현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발언 서두에 꼭 하는 ‘존경하는 ○○의원님’같은 표현은 전혀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뱉는 말 같아 역겹기까지 합니다.

  참신한 자기만의 표현을 하라는 것은 깜짝 놀랄 표현을 찾아내라는 게 아닙니다. 판에 막힌 글을 벗어나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태도를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요즘 TV에서 인기 속에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기성 가수의 창법과 닮았거나 틀에 박힌 발성을 하는 참가자는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가차없이 탈락시키는 것을 봤을 것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투적 표현은 유통기한이 지나 상한 음식 같은 것입니다. 좋은 고기에 상한 야채를 섞으면 못 먹을 음식이 되는 것처럼, 글의 내용과 구성이 좋아도 몇 개의 틀에 박힌 표현이 주는 좋지 않은 인상 때문에 글 전체가 낮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더 새롭고 참신한 말 없을까’를 고민한다면 당신의 글은 몇 배 더 좋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