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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가락 문장'을 버려라

죽장 2013. 12. 3. 12:44

[김명환 기자의 글쓰기 교실]

'엿가락 문장'을 버려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게 글 쓰기의 기본입니다. 이를 가로막는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가 문장을 너무 길게 쓰는 겁니다. 어떻게 쓰면 너무 긴 것일까. 어느 고등학생이 쓴 글을 봅시다. 5세 미만 어린이의 식당 출입 금지를 놓고 벌어진 미국 내의 논란을 전해듣고 의견을 밝힌 글의 일부입니다.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식당이 늘어난다면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외식을 할 때 아이를 따로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식당을 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식당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지만,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이의 식당 출입은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썼습니다. 글자 수를 세어 보니 160자가 넘습니다. 숨이 가빠 읽는데 힘이 듭니다.이 글의 문제는 문장이 길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삭제해도 좋을 군더더기 같은 문구들이 있습니다.가령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외식을 할 때 아이를 따로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식당을 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식당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이란 대목이 그렇습니다. 이 대목은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외식을 못 하는’이라고 쓰면 훨씬 간명하고 좋은 표현인데 쓸데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습니다.

 <6세 미만 어린이 출입을 막는 식당이 늘면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아이 봐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외식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어린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의 식당 출입은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네 문장으로 나누고, 군더더기들을 추려냈더니 훨씬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봅시다. 에너지 절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개최된 ‘자전거 발전 행사’를 본 학생의 글입니다. 페달을 밟아 발전기를 돌림으로써 전기를 만들어 보는 행사였죠.

 <이번 이벤트는 고유가 시대인 지금 동력 절약을 위해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우리들에게 우리들 스스로도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키워주는 동시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함께,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전류를 만들어냄으로써 참가자들에게 성취감과 절약 정신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전하고 싶은 내용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이해시켜 줘야 하는데, 여러 내용을 이어붙여 가며 길게 늘어 놓았기 때문에 읽기도 이해하기도 벅찹니다.다음과 같이 고쳤더니 훨씬 나아졌습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우리에겐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번 이벤트는 그런 우리들에게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보자는 도전 정신을 키워 줬다. 또한 우리가 놓인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다리의 힘으로 전류를 만들어 냄으로써 성취감도 얻고 절약정신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

  물론 짧은 문장, 즉 단문(短文)만이 최선의 문장은 아닙니다. 문학작품 중에는 일부러 문장을 길게 써서, 긴 호흡의 맛을 멋지게 구사하는 글도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문이나 학술논문 등에서는 한 문장이 몇백 글자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글 쓰기에서는 단문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엿가락 처럼 늘어진 긴 문장에 비해 단문은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단문으로 쓰면 여러 문장들이 경쾌하게 행진하는 것 같아 리듬감이 더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신문 기사 쓰기의 기본은 짧은 문장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읽는 독자에게 뉴스를 정확하고도 쉽게 전달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긴 문장은 왜 이해하기에 불편할까요. 숨을 쉬어갈 데가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 어구들이 복잡하게 얽혀 명료한 이해를 막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일어난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을 다룬 다음 기사를 봅시다.

우리나라 화재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이처럼 긴박한 사건을 다루는 신문 기사는 짧은 길이의 문장으로 쓰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화재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이처럼 긴박한 사건을 다루는 신문 기사는 짧은 길이의 문장으로 쓰는 것이 좋다.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에 발화해 만 18시간만에 완전 진화된 대연각호텔 불은 소방당국의 수색작업 끝에 119명의 사망자를 낸 1948년 미국 아틀랜타시 호텔 화재사건의 사망자를 38명이나 능가하여 세계의 호텔 화재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

   

  미국 대화재의 통계와 한국 화재 사망자 집계가 뒤엉켜 명확한 전달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연각 호텔 사망자 숫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에 발화한 대연각호텔 불은 만 18시간만에 완전 진화됐다. 소방 당국의 수색작업 끝에 사망자는 157명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는 1948년 미국 아틀랜타시 호텔 화재사건 때의 사망자 119명보다 38명이나 많은 것이어서, 세계 호텔 화재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짧은 문장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문장이 길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죠. 학자들이 영어 문장의 평균 길이를 조사해 보니 20세기에는 18세기의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한 문장을 몇 글자 이내로 써야 단문일까요. 흔히 한글 글자 수로 80자가 넘어가면 매우 긴 문장이고 50~70자이면 약간 긴 문장으로 봅니다.단문은 한 문장이 약 30글자 이내인 경우를 말합니다. 보통 A4용지에 10포인트 글자로 인쇄했을 때 한 줄 약 40여자가 들어가니 한 문장이 A4용지 한 줄이 넘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단문으로 작성한 조갑제 기자의 글 하나를 읽어 봅시다. 자칫하면 긴 문장으로 늘어지게 쓸 수도 있는 내용인데 신문 기자 생활에서 몸에 밴 문체 그대로 단문의 맛을 잘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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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런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격파하고 우승하였다. 바르셀로나의 압도적 전력(戰力)은 통계로도 확실하다. 바르셀로나가 공을 가진 시간은 63%, 맨체스터는 37%였다. 바르셀로나는 골 적중 슛을 열 두 번 했으나, 맨체스터는 한 번뿐이었다. 이 한 번이 루니의 골이었다. 패스의 성공률과 양에서도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이었다. 한국 언론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소속이라고 이 팀을 편드는 기사를 많이 써 왔으나 실력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 결승전에 매시와 박지성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쓴 신문도 있었다. 김연아가 은메달을 따기도 전에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인 것처럼 기사를 쓰는 촌스러운 '스포츠 국수주의'는 이제 그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