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기자의 글쓰기 교실]
'엿가락 문장'을 버려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게 글 쓰기의 기본입니다. 이를 가로막는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가 문장을 너무 길게 쓰는 겁니다. 어떻게 쓰면 너무 긴 것일까. 어느 고등학생이 쓴 글을 봅시다. 5세 미만 어린이의 식당 출입 금지를 놓고 벌어진 미국 내의 논란을 전해듣고 의견을 밝힌 글의 일부입니다.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식당이 늘어난다면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외식을 할 때 아이를 따로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식당을 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식당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지만,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이의 식당 출입은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썼습니다. 글자 수를 세어 보니 160자가 넘습니다. 숨이 가빠 읽는데 힘이 듭니다.이 글의 문제는 문장이 길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삭제해도 좋을 군더더기 같은 문구들이 있습니다.가령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외식을 할 때 아이를 따로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므로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식당을 가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식당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이란 대목이 그렇습니다. 이 대목은 ‘6세 미만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외식을 못 하는’이라고 쓰면 훨씬 간명하고 좋은 표현인데 쓸데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습니다.
<6세 미만 어린이 출입을 막는 식당이 늘면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아이 봐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외식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어린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의 식당 출입은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네 문장으로 나누고, 군더더기들을 추려냈더니 훨씬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봅시다. 에너지 절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개최된 ‘자전거 발전 행사’를 본 학생의 글입니다. 페달을 밟아 발전기를 돌림으로써 전기를 만들어 보는 행사였죠.
<이번 이벤트는 고유가 시대인 지금 동력 절약을 위해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우리들에게 우리들 스스로도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키워주는 동시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함께,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전류를 만들어냄으로써 참가자들에게 성취감과 절약 정신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전하고 싶은 내용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이해시켜 줘야 하는데, 여러 내용을 이어붙여 가며 길게 늘어 놓았기 때문에 읽기도 이해하기도 벅찹니다.다음과 같이 고쳤더니 훨씬 나아졌습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우리에겐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번 이벤트는 그런 우리들에게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보자는 도전 정신을 키워 줬다. 또한 우리가 놓인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다리의 힘으로 전류를 만들어 냄으로써 성취감도 얻고 절약정신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
물론 짧은 문장, 즉 단문(短文)만이 최선의 문장은 아닙니다. 문학작품 중에는 일부러 문장을 길게 써서, 긴 호흡의 맛을 멋지게 구사하는 글도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문이나 학술논문 등에서는 한 문장이 몇백 글자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글 쓰기에서는 단문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엿가락 처럼 늘어진 긴 문장에 비해 단문은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단문으로 쓰면 여러 문장들이 경쾌하게 행진하는 것 같아 리듬감이 더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신문 기사 쓰기의 기본은 짧은 문장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읽는 독자에게 뉴스를 정확하고도 쉽게 전달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긴 문장은 왜 이해하기에 불편할까요. 숨을 쉬어갈 데가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 어구들이 복잡하게 얽혀 명료한 이해를 막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일어난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을 다룬 다음 기사를 봅시다.
- 우리나라 화재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이처럼 긴박한 사건을 다루는 신문 기사는 짧은 길이의 문장으로 쓰는 것이 좋다.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에 발화해 만 18시간만에 완전 진화된 대연각호텔 불은 소방당국의 수색작업 끝에 119명의 사망자를 낸 1948년 미국 아틀랜타시 호텔 화재사건의 사망자를 38명이나 능가하여 세계의 호텔 화재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
미국 대화재의 통계와 한국 화재 사망자 집계가 뒤엉켜 명확한 전달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연각 호텔 사망자 숫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에 발화한 대연각호텔 불은 만 18시간만에 완전 진화됐다. 소방 당국의 수색작업 끝에 사망자는 157명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는 1948년 미국 아틀랜타시 호텔 화재사건 때의 사망자 119명보다 38명이나 많은 것이어서, 세계 호텔 화재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짧은 문장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문장이 길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죠. 학자들이 영어 문장의 평균 길이를 조사해 보니 20세기에는 18세기의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한 문장을 몇 글자 이내로 써야 단문일까요. 흔히 한글 글자 수로 80자가 넘어가면 매우 긴 문장이고 50~70자이면 약간 긴 문장으로 봅니다.단문은 한 문장이 약 30글자 이내인 경우를 말합니다. 보통 A4용지에 10포인트 글자로 인쇄했을 때 한 줄 약 40여자가 들어가니 한 문장이 A4용지 한 줄이 넘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단문으로 작성한 조갑제 기자의 글 하나를 읽어 봅시다. 자칫하면 긴 문장으로 늘어지게 쓸 수도 있는 내용인데 신문 기자 생활에서 몸에 밴 문체 그대로 단문의 맛을 잘 살렸습니다.
<오늘 새벽 런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격파하고 우승하였다. 바르셀로나의 압도적 전력(戰力)은 통계로도 확실하다. 바르셀로나가 공을 가진 시간은 63%, 맨체스터는 37%였다. 바르셀로나는 골 적중 슛을 열 두 번 했으나, 맨체스터는 한 번뿐이었다. 이 한 번이 루니의 골이었다. 패스의 성공률과 양에서도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이었다. 한국 언론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소속이라고 이 팀을 편드는 기사를 많이 써 왔으나 실력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 결승전에 매시와 박지성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쓴 신문도 있었다. 김연아가 은메달을 따기도 전에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인 것처럼 기사를 쓰는 촌스러운 '스포츠 국수주의'는 이제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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